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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일기


어느 고마운 날의 단상
애린  2005-02-21 21:50:27, 조회 : 4,492, 추천 : 790




        어제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치아가 아프다며 왼쪽 턱을 움켜쥐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들녀석을 보고 많이 당황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내 중심지에 시설 좋은 일본인 치과도 있고, 우리 집에서 장거리이긴 하지만 치료비가 약간 저렴한 병원 이야기도 듣긴 했으나 장기 체류의 목적을 둔 우리식구에게 적합하지 않은 병원들이었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부담감이 앞서 있었다.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부풀리는 외국인 병원의 진료비를 감당하고 살만큼 이 곳 생활이 만만한 게 아니어서 우리나라 주부들은 저렴하면서 똑 같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있다.

        병원뿐 아니고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이런 알뜰한 주부들의 정보는 중요한 일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보는 많아도 실질적으로 이것이다 싶은 정보가 여전히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평소에 알고 지낸 베트남부인을 둔 분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병원이 있다는 소식을 어젯밤에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들과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십 여분 거리에 있다는 그 병원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고만고만한 상가들이 즐비한 그곳을 수도 없이 오고 갔지만,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더욱 눈 여겨 볼 수 없었던 거리에 치과가 있었고, 치과 앞에는 겨우 사람들이 들어갈 만큼의 공간만 남기고 빼곡하게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크지 않는 대기실에 그 오토바이의 주인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신문과 잡지 등을 읽고 있다가 우리의 갑작스런 방문에 일제히 한곳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하얀 가운을 입은 내 또래나 됨직한 간호원에게 어젯밤 외운 베트남 단어를 최대한 활용해서 오게 된 목적을 설명했고, 주소와 이름을 쓰고 기다리라는 간호원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젠가 어떤 병원은 외국인이 오기만 하면 베트남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심을 쓰듯 먼저 진료를 해 주고 엄청난 진료비를 청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인지 기다리면서 혹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어 노심초사 걱정하고 있었다. 진료비의 부담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침내 우리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보니 복도를 두고 두 개의 문이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간호원과 두 분의 의사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반갑게 맞아주는 여의사 곁에 다가갔고 서툰 내 베트남 말을 어는 정도 이해했다는 듯 의사는 아이의 치아를 꼼꼼히 살펴 주며 아들 곁에 계속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해 주었다.

        이윽고 딸애의 흔들리던 어금니까지 빼고 나니 의사는 치아가 아프면 다시 이곳으로 오라는 말을 해 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치료비는 어디다 지불하면 되는지를 물었더니 뜻밖에도 치료비를 받지 않겠다며 두 개의 카드에다 각각 아들과 딸애의 이름을 써주며 나중에 애들이 아프면 언제든 다시 오라는 당부를 거듭 잊지 안았다. 나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면서도 그래도 치료비는 내겠다고 했지만 의사는 한사코 치료비 받기를 거부했다.

        이곳에 먼저 온 많은 교민들의 말에 의하면 베트남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나 그 연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여느 외국이 그렇지 않을까 만 나 또한 이곳에선 외국인이어서 현실에 부딪히는 내, 외국인의 차별의 부당성이 커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이런 특혜를 받아도 되는지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대기실에서 부족한 의자를 우리에게 양보하던 베트남 아저씨도 생각난다.

        지난달 우리나라 한 방송국의 방송에서 베트남 교민생활이 파헤쳐 졌다는 소식을 이곳 교민잡지에서 읽었다. 그리고 한국에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그런 방송이 나간 후 이곳으로 나온 한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으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나의 이기심은 억울함 이었다.

        그러나 한번쯤 그런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전무한 것은 아니어서 지금에 와서 딱히 이렇다 할 내 의견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이곳은 생각보다 자유로운 시회국가가 아니고 생각보다 엄격한 시회국가 법이 있는 나라 다는 거다.

        그런 나의 경직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이순간에도 나를 당황케 하는 오늘의 행운과 이들의 따뜻한 마음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다시 그 병원을 찾을 때는 어떻게 하든 고마운 내 소박한 마음을 보여 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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