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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일기


엘리베이터에서 생긴 일.
애린  2004-10-07 17:27:47, 조회 : 2,950, 추천 : 586


      저물 무렵 호치민.


      “어느날 이걸 타고 올라가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추는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올라탄 아줌마들이 지층의 버튼을 누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위층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말했더니 한 아줌마가 '위층 어디요? 라고 묻지 않겠어요? 그래서 살펴보니 세상에 빨간 번호 등은 어느 곳에도 켜져 있지 않았지 뭡니까.

      아마도 제가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내려야 할 곳은 내버려둔 채 문닫는 버튼만 눌렀나 봐요. 그리고 때마침 지층으로 내려갈 아줌마들이 삼층에서 버튼을 누른 거고요.그때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가면서 어찌나 창피하고 어이가 없던지."

      오늘 아침, 아이들 스쿨버스를 배웅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바로 밑에 층에 사는 아낙의 버튼을 눌러주며 했던 말이 였다.

      그런데 그에 버금가는 황당 사건이 어제 또다시 재연 되었는데 그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이곳의 아파트는 낮은 지반 때문인지 밖에서 보면 정사각형 인데 사실은 안에는 직사각형의 공간이 비워 있다. 빈 공간을 사이로 한 층에 여덟 가구가 있고, 층마다 연결되어있는 복도와 두개의 비상구,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문제의 그 엘리베이터를 타게 된 것은 가까이 있는 한국식품점에서 저녁 찬거리와 과일 등을 사고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였다.

      위층의 화살표 등이 켜진 채로  중간만큼 올라가는 한 쪽의 엘리베이터를 등지고 문만 닫힌 채 지층에 내려와 있는 또 하나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저만치에서 베트남 청년이 뛰어 오고 있었다.

      잠시 여는 문 버튼을 누르고 있는 사이 올라탄 그 청년은 내가 눌러둔 번호보다 한 참 아래의 버튼, 6층을 눌러 두었고, 어느새 도착한 그 곳에 내려 걷다 보니 몇 걸음 앞서간 그 청년이 뒤돌아보는 게 아닌가.

      아차! 하는 사이 이미 엘리베이터는 11층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계속 그 청년의 뒤를 따라가면 건너편 엘리베이터를 금방 탈 수 있을 거란 계산이 나오지만, 발걸음은 빠르게 뒷쪽 비상구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내 모습을 누군가 보고 있었다면 정신 나간 어떤 아낙이 어쩌다 웃음보를 터뜨리곤 어디론가 도망가고 있었다고 했겠지.

      그랬다. 먼저 내린 그 청년에게 다 들키고는 또 다시 들킬 까봐 나는 그 무거운 과일봉지를 들고 두개의 층을 더 올랐지...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 다시 6층에서 올라오고 있는 건너편 엘리베이터를 탔고...그 문이 열리는 순간까지 그 청년이 타고 있을까 봐 나는 또 얼마나 마음을 졸였나.

      200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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