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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일기


물은 흐르고 흘러서...
애린  2005-01-06 14:42:41, 조회 : 3,578, 추천 : 672



    연못에서 수련의 새순을 따는 소녀.


    평소 알고 지낸 베트남 사람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그곳은 호찌민시 동남쪽 변두리에 있으나 어느 지점부터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더는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논둑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가 사라질 수 없는 원천은 바로 이런 여건 때문일 것이다.

    벼 이삭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로 보아 멀지 않은 추수를 예감할 뿐, 이국만큼이나 낯선 시골은 망망대해 늪지대였다. 길이라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논둑길이 전부였다. 그러나 오랜 가뭄으로  목마른 둑길은 소나무 껍질처럼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농가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정갈했다. 군더더기 없는 농가 산림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정돈된 헛간을 둘러보지 않더라도 이 집 식구들의 깔끔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낮은 기온에 연꽃이 피지 않는 연못과 농가

    처마 끝에 이어진 관 아래로 물통들이 즐비해 있는 걸로 보아 우기 때는  빗물을 받아쓰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건기인데다가 수돗물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데도 그 많은 통속엔 물이 가득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물은 바로 앞에 있는  갈색 물이 찰랑 이는 연못에서 퍼 담은 물이라고 했다. 그 물의 찌꺼기가 가라앉고 맑은 물이 떠올라 식수가 되기까지의 시간 때문에 그 많은 물통이 필요했던 것이다.

    연못에서 수련이 얼마큼의 물을 정화해 줄지는 모르나 둑 하나를 사이로 화장실과 양어장이 있고, 그 건너엔 오리 농장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아연케 하기에 충분했다. 주위가 모두 물바다이다 보니 비록 둑이 진흙으로 되어 있다지만 쌓인 둑 틈으로 물의 혼합 일체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특히나 오랜 건기 중인 요즘 하늘에서 빗물이 떨어지기는 만무한데 여전히 물은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바다 수면과 동시에 높아진 강물의 범람 때문이었다.


    지붕이 없는 화장실

    초등학교 사 학년 겨울방학 때 우리 가족은 고향인 섬으로 다시 이사하게 되었다. 비록 유년기를 그 섬에서 보냈다고 하지만, 섬 생활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나는 그토록 그리워지고 보고 싶던 어린 날 옆집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무색게 했던 어느 바람 부는 날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바로 집 주위에 있는 말라버린 샘을 등지고 붉은 동백꽃이 둔탁하게 떨어지고 있던 숲 속을 가로질러 엄마와 나는 빨래통을 이고 보물섬을 찾아 나서야 했다. 이윽고 찾아낸 우리의 보물섬은 갈잎에 덮인 채  물을 퍼낼 때마다 금세 흙탕물로 변해버린 빈약하기 짝이 없는 물웅덩이였던 것이다. 수돗물이 옥수처럼 눈부시게 쏟아지던 도시의 지난날은 환각이었을지언정 그 순간 그것은 끔찍한 기억이 되고 말았다.


    오리농장

    그런 절망의 나날이 섬의 가난한 물줄기만큼 메말라 버린 어느 순간부터 그 생활은 익숙해졌고, 식수로 사용하던 샘물은 언제나 동네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의 몫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듯 섬에서 살아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물을 아끼고 찾아내는 지혜와 부지런함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나눔의 실천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우연히 아랫동네의 낮은 샘물을 마셔볼 기회가 있었다. 그 맑은 샘물은 짭짤하게 간이 되어있었다. 쓰레기와 얕은 기름띠가 유유히 유영하던 바닷물 유입의 증거인데 알고도 모른 체 사람들은 그 샘물로 한여름의 갈증을 시원스레 해갈하곤 했었다. 그런 문제를 제기할 기력마저도 남아 있지 않은, 그나마도 귀한 샘물이었고, 그도 모자라 물을 찾아 배를 타고 나가야 할 만큼 그 섬은 목말라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농가의 주인집 딸과 친척아이들.

    이즈음 새삼 느껴지는 것은 모든 물은 언제나 섞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내가 보았던 어느 허름한 농가의 화장실과 오리농장의 악취에 뒤섞인 혼탁한 물이 사이공 강을 따라 흘러서 더러는 아름다운 서남아시아 해변에서 까만 주검의 엄청난 가해자가 되었을 테고 그 가해자는 어느덧 우리 고향 청정해역 그 푸른 물빛 속에 감쪽같이 뒤섞여 옥빛 파도 되어 뒹굴고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아무리 깨끗하고 맑은 물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간절히 원할 때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오만 잡균이 번식한 물보다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애린
* 이 답글은 여러홈에 동시에 올린 답글입니다.

베트남 사람들과 같이 식사는 여러번 해 봤어도
가정방문은 처음이었습니다..

높은 양철지붕 아래 세 칸으로 나눠진 실내에는
부엌과 두개의 방이 있는데
방 하나는 다시 두 칸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가전제품 이라곤 12인치 칼라 TV와 두 대의 선풍기 뿐이었어요.
그나마 한대의 선풍기는 철망도 없었지요.
그런데 우리의 필수품 냉장고가 없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습니다.

우리가족이 방문했던 그 집은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큰 아들은 대학생이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요. 나머지 둘은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학생아이들은 우리 클 때와 비슷하더군요.
특히 다소곳이 설거지 하던 그 집 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동네 구경도 그 딸이 시켜주었거든요.서로 충분한 의사소통만 되었다면
참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아침 일찍 손님 맞을 준비를 했는지
우리가 도착하자 마자 식탁이 푸짐했습니다.
저도 그 틈에 끼어 준비해간 보쌈김치와 한국음식을 펼쳤는데
그 집 둘 째 아들이 한번 먹어봤다는 한국김치를
잘 먹어줘서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 동안 최소의 풍요로 최대의 행복을 누리던 그 가족은
조만간 자신의 터전을 내놓아야 한답니다.
아파트가 들어선대요. 얼마간의 보상이 따르겠지만
지금 보다 못할 거라고 걱정을 하더군요.

남을 위로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는 거라던 드라마 대사가 떠오릅니다.
그날 하루 저는 너무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리고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많이 부자라는 걸 새삼 알았습니다.
2005-01-07
17:40:27



애린
이재운님의 소설 토종비결에서 ‘바다를 읽는 어부’에 나온 화담이
어부와 지함,박지화에게 했던 수론 강의 내용입니다.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놓고 옛 사람들은
‘법(法)’이라는 글자를 생각해냈습니다.
법이 무엇인가. 천지 우주가 흘러가는 이치올시다.
물에서 생로병사와 생장염장이 있습니다.
물은 비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땅속으로 스며드는 물은 시내를 이루기도 하고
조그마한 샘물이 되기도 하여
마치 어린아이가 자라는 모양과 같습니다.
강이 되기까지 자라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다에 이르러 하나가 되기까지,
바라라는 것으로 모일 때까지
염을 하는 것이지요. 장(藏)이란 바다 그 자체입니다.
물도 죽어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물은 어떻게 죽는가.
물을 그릇에 담아 햇볕에 내어놓으면 줄어들지요.
그것을 물이 죽는다고 합니다.
물이 죽는다면 영원히 죽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모양이 변하는 것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비가 되어 다시 태어납니다.환생하는 것이지요.
물이 윤회하는 것입니다.”
2005-01-14
17:2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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