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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일기


운명은...
이종희  2004-09-15 13:43:17, 조회 : 2,552, 추천 : 480




      첫아이의 돌잔치를 한달 전에 치룬 이웃아낙이 계약기한이 몇 달 더 남은 집이 빠지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뒤늦게 결혼해서 이곳에다가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예전의 일터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떠났다는 것이다.

      다니던 회사에 사표가 처리되자마자 직장을 구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지난 주에 들었던 것 같은데 세상의 긴박한 흐름이 이들 부부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오랜 해외 근무를 마치고 이제는 고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설렘을 안고 귀국하는 많은 이들이 얼마안가 또다시 떠남을 반복한다고 한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겠지만, 내 나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중동의 모래바람보다, 오랜 이국생활의 외로움보다 이들을 힘들 게 했던 건 오래 전 기억에 대한 기대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내 기억 속 그곳은 힘들긴 했으나 적어도 이웃과 가족과 친구가 있었지. 그리고 계절마다 이들과 함께 했던 향기로운 추억이 있었고...
      급물 살을 타는 요즘 세상에 예전 것은 그대로 남아줄까?’...

      이런 막연함 속에서도 다시 떠난 다는 것이 두렵다는 이 아낙이 외려 부러운 건 먼 곳에 대한 나의 환상일 것이다.

      자꾸만 그 너머의 세상이 궁금하고 보고싶어 진다. 어쩌면 이런 내 바람때문에 이리저리 떠도는 역마살 운명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내 감각 기관에 매일 간지럼을 태워야지..

      2004.9.15



      * 애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09-18 15:50)


애린
다른 홈에 올라 온 답글중 한 분의 답글을 퍼왔습니다.

*양재연
==========
구름이 바람을 거부할 수 없는 법칙이
인생에 그대로 비추어지는 걸까?

그럼, 운명의 바람은 나를
어디로 몰고 가는 것일까?

진정 운명의 힘이 느껴지는 이 때,
옛 현인들의 구름이 가슴에 떠 오르는 것은

아련한 추억들이 엉키며 그려지는 것을
'몽유도'의 꿈속인들 어찌 달래리!

벗어날 수 없는 삶이라도
연연하지 않음은 새 마음을 낳고

육면체의 공간을 넘어
사랑으로 닿을 수 있음이니

번뇌에서 벗어남은
저 산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잃지 않으면
'연화의 묘법'을,
'가난한 자'에 복이 있음을

어찌 자연이 거부하리오!



*애린
======
가끔 저는 가족과 이곳 시내 중심지를 지나 사이공 강까지 걸어봅니다.
생각보다 아름다운 프랑스식 건물이며 곳곳에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공원,
그 벤치의 다정한 연인들 마저 저에게는 한 폭으로 그림으로 다가오지요.

특히나 유명한 호텔 주위를 지날 때면
한 눈에도 관광객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두리 번 거리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리고 멀지 않는 곳엔 어김없이
자잘한 과일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양쪽에 걸어 맨
논락(베트남전통모자)이란 모자를 쓴 여인을 만나죠.
그리고 그 여인은 이내 어설픈 저의 사진속 소제가 됩니다.

어느날인가 사진을 찍다가
그 여자와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움찔 놀란 건,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오래 전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던 그 해 여름 여수로 전학을 와서는
어느날 하교길
시내 중심지 높은 건물 앞에 서 있는
내 또래 여자아이를 만난 겁니다.
그 아이는 초인종을 눌러두고는
집안의 언니와 대화를 하더군요.

대문앞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어찌나 카랑카랑하던지
저 만치 떨어져 있던 내 귓전에도
들려올 정도 였으니까요.

라디오 말고 처음으로 기계 속 목소리를 들으며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함을 느꼈습니다.

내 어린시절 잊혀졌던 환상이
바로 그 여인 눈빛에서 부서지는데
내 가슴은 아주 오랜만에 따뜻해지더군요.

'그 세상이나 이 세상이나
산다는 건 다 그렇게 아득한 거였어.
그렇지만 또 그렇게 살아봐야지.

모두에게 공평한 계단이 있었다
쉽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맨 처음 우리는
얼마나 불리한 시작이었고
또 열심히 뛰었지만
숨어있는 늪은 얼마나 많았나.

먼 훗날 우리의 계단이
환상이었으면 어때
이 순간 오를 수 있는 계단이
그곳에 있는 게 중요하지.

그리고 가끔은 그런 날은
내 생애 참 좋은 햇살이었다...기억해야지...

아이쿠! 아침부터 먼 소리를 하는지…ㅎㅎㅎ

양재연님 안녕하세요?
님의 무게가 저는 참 좋습니다.
좋은 날 되세요!
2004-09-16
12: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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