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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일기


수제비
애린  2009-02-22 00:30:43, 조회 : 3,184, 추천 : 616



    사진/섬짱



    내 어릴 적 선주셨던 아버지는 고향바다에 모든 걸 빠트리고서야 고향을 떠나게 되셨다.

    그 무렵 아버지는 온 몸으로 전위된 상실감 때문인지 걷지 못할 정도로 중병을 앓게 되셨는데,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도 병명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희귀한 고통에 시달리셨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종교에 이끌려 말끔히 낫게 되는 불가사이한 일을 겪게 되셨는데, 그렇게 해서 시작된 아버지의 신앙심은 점점 깊어져갔고, 생활이 녹록치 않는데도 가족을 이끌고 무작정 객지를 떠돌며 포교 생활을 하게 되셨다.

    광주를 떠나 곡성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순탄했다는 기억이 있는데, 우리 엄마는 생각보다 암담한 생활이었다고 가끔 회고하셨다.

    어느 날 밤이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보니 부모님이 다투고 계셨다. 그 많은 신자들이 가져다준 곡식을 아버지는 한 톨도 남김없이 종교를 위해 헌납하고 며칠 만에 돌아오신 것이었다.

    그날 밤 마침 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고, 엄마는 나를 흔들어 깨우시더니 다짜고짜 배가 고프냐고 묻는 것이었다. 아니라고 아무리 우겨도 엄마는 한사코 나를 일으키더니 다 식어 불어터진 수제비를 가져와서는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신 거였다.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생하다 그 종교로 인해 다시 건진 목숨이라 그 시절 아버지의 믿음은 각별했고, 이슬처럼 맑은 그 무엇이 아버지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신앙으로 얻은 물질적인 그 어떤 것도 우리 가족에게 귀속되지 못했던 건 사실이고, 그로인해 궁핍한 생활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는 또 다른 부업을 통해 채우셔야했고, 그런 삶을 유지하기위해 부모님은 참으로 부지런했고 바쁘셨다.

    엄마가 끓여주신 수제비는 언제나 똑같은 맛이었지만 나는 수제비를 매일 먹는다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 동생은 달랐다. 먹을 것이라곤 수제비밖에 없을 때도 동생은 수제비를 잘 먹지 않아서 엄마의 애를 무진 태웠다. 그래서 그랬던지 동생은 키가 빨리 자라질 않았고, 아홉 살에 겨우 초등학교를 입학한 것이 그 때문은 아닌가 싶다.

    어느 날인가부터 압록에 살던 고종사촌 언니가 병을 얻어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마음도 착하고 예쁜 그 언니가 병을 얻은 것이 어떤 남자에게 당한 실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포교활동을 하러 나가시면 부모님을 대신해 그 언니는 우리에게 수제비를 끓여 주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언니의 손맛을 잊지 못한다.

    얇디얇은 것이 쫀득했고 국물도 구수해서 배가 불러도 또 먹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언니에게 수제비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 맛의 비법은 의외로 간단한 반죽에 있었다.  반죽을 오래하면 할수록 면이 쫄깃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죽을 뜯어 끓는 물에 넣을 땐 손바닥에 참기름을 살짝 바른다는 것이었다.  

    그 비법을 알게 된 후 수제비 담당은 자주 내가 되었다. 그때 내 나이가 10살 이었고, 그해 가을 언니는 영영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그 후 아버지는 마음 깊은 곳에 신앙심을 간직하며 평소 꿈꾸던 소박한 귀향을 실천하기로 했던 것이다.

    밀가루로 만드는 수제비를 고려 시대부터 먹기 시작했으나, 수제비라는 단어 자체는 조선 중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손을 뜻하는 한자 수(手)와 접는다는 의미의 '접'이 합쳐져 '수접이'라 부른데서 나왔단다.

    과거에는 그리 흔히 먹을 수 없어 돌잔치와 같은 잔치 때 먹는 특별한 음식으로 취급되기도 했다는 수제비를 한 때 우리는 질리도록 먹었고, 그랬음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나는 여전히 수제비가 먹고 싶고, 그럴 때면 한밤중에 불어 터진 수제비를 먹이기 위해 한사코 나를 깨우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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