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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일기


바람이 기댈 곳은...
애린  2008-07-03 00:57:42, 조회 : 2,186, 추천 : 352



      집 떠나면  집시가 되는 우리는
      비닐하우스 안에 텐트를 치고
      그 밤을 보내게 되었지요.





      많은 비가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나선 길이
      외려 설렜던 건
      바로 그런 여건 때문이었을 거예요.





      비닐하우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좋을 것 같았고
      그 안에서 바라보는 그 밖의 세상이 멋질 것 같았거든요.





      그런 내 예감은 역시나 빗나가질 않아
      정말 오랜만에 단꿈을 꾸는 것 같았지요.





      밤새 오락가락했던 빗소리는
      그야말로 세상과 나 사이에 장막을 쳐 주었거든요.





      어린 아이가 구석진 자리에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놓듯
      어쩌면 나도 그런 자폐증을 앓고 있는지 몰라요.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요.
      이별은 만남의 길을 만들고
      만남은 또 다른 길을 위해
      떠나고 있을 테니까요.





      여행을 떠나면  
      혼자 걷는 길을 좋아해요.
      바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그리 낯설지 않는 길을 만나거든요.





      비구름이 다 빠져나가지 않은 하늘 아래
      푸른 초원은 모두 내 것인 냥  
      편하고 익숙해져 있었고요.





      저는 간만의 자유에 흔들리는
      풀꽃이고 싶어졌어요.





      은 초롱 빗방울이
      아직 떠나지 않은 들녘의 풀잎들은
      제 무게에 버거워 보이긴 했어도
      싱그러운 풋내를 털어주면
      바람은 고맙다는 듯 다시 한 번 휘 돌다
      어디론가 떠나갔어요.







      그리고 그것이 끝인가 싶은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찰나
      어느새 바람은 제 주위를 맴돌고 있었고요.





      어쩌면 바람이 기댈 곳은 풀잎인지도 몰라요.





      가녀린 어깨에 기대어
      많은 이야기를 내려놓고
      홀연히 떠나기를 수 없이 반복하면서도
      결국은 다시 돌아와  있거든요.







      풀꽃과 바람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애증으로 다가선 그대

      그대 스치는 날엔
      하늘 향해 솟던 그리움
      깊은 산 담장에
      꼭꼭 숨기고 싶어요.

      이제는 덮어두자
      맹세도 했건만
      한 낮 햇살에 수줍게 웃고 나면
      어느새 그대는
      여린 마음 흔들고
      섧게 떠나갑니다.

      저 구름이
      구슬픈 내 노래마냥
      겹겹이 새긴 기억
      풀어준다면
      휘청대는 내 사랑도
      의연할 수 있을까요.

      지워도 지울 수 없는
      슬픈 내 이연(異緣)은
      때로는 낯선 영혼처럼
      적막한 들녘 이슬 되어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그러다 문득
      그대 지나는 날이면
      끝내 초연할 수 없는 것이
      그대는 바람,
      나는 풀꽃인가 봅니다.



      글,사진/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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