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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일기


세월은 마데카솔 연고처럼...
애린  2005-03-23 19:04:43, 조회 : 2,993, 추천 : 383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는 푸들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사시는 할머니도 계신다.

        이른 아침이나 저물 무렵이면 어김없이 마스크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신 할머니는 유모차에 작은 강아지를 태우고 뒤따르는 큰 푸들과 함께 산책을 하시는데, 그림 같은 그 모습을 넋을 놓고 지켜볼 때가 많았다.  

        작은 사업을 하시는 할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사시는 할머니는 장성한 자식들이 있지만, 다른 외국에 있는 직장때문에 자식들과 떨어져 살고 계신다.그래서인지 두 마리의 푸들과 여유로운 노년을 즐기시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그저 다행스럽고 좋게만 보였다.

        매일 까만 눈만 내놓고 산책을 하시는 할머니 모습만 보다가 어느날 우연히 마스크를 벗은 할머니를 뵈었는데 크고 까만 눈과 고운 얼굴에 흰 파마머리, 할머니의 애견 푸들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할머니, 세상에… 강아지와 너무 닮았어요.” 라며 크게 웃어 비렸다. 그런 내 말에 할머니는  “네…얘들이 제 자식들이라서 그래요.” 라며 빙그레 웃어주셨다.

        그런데 어느 날 큰 사건을 겪었다는 할머니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로 그 자식 같은 강아지 한 마리를 할머니가 뻔히 보는 앞에서 베트남 사람이 쇠사슬에 묶어서 납치를 해가 버린 것이다.

        그런 사건이 있기 며칠 전부터 범인은 이미 할머니의 강아지를 표적으로 삼았던 것인데, 그리하여 문제의 그날 긴 그림자를 밟으며 지나가는 할머니의 평화로움은 일순간에 깨지고 만 것이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할머니를 발견한 것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 아저씨였고, 그 아저씨가 겨우 모시고 돌아 오긴 했지만, 할머니는 반 넋이 나갈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다 한다.

        그런데 이튿날 범인은 강아지의 몸값을 요구해 왔고, 불행 중 다행으로 적잖은 몸값을 지불하고 할머니는 다시 강아지를 품에 안게 되었다 한다. 그러나 예전의 평화로움이 한동안 할머니나 강아지에게 다시 이어지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는 흘러준 세월 덕에 멀리 산책을 나서진 않으셔도 아파트 화단 난간에 앉아 강아지를 지키고 계시는 할머니 모습을  뵐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에게 세월은 이렇게 상처를 지워주는 마데카솔 연고였으면 좋겠다. 아니 그보다 이런 일이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상처 없는 삶이란 부석거리는 요즘 이 나라 날씨 같겠지만 이것 말고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불 해야 하는 대가는 얼마나 많은가...


애린
오늘 아침, 푸들을 안은 할머니와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습니다.
푸들 한 마리는 이웃집에 놀러 보냈다고 하시기에
오늘도 하얀 파마머리 할머니와 푸들은 너무 닮았다고 말했더니
이제는 성격도 나와 너무 닮았다고 대답하시던 할머니는
이 아이(푸들)와 십 년을 같이 살았다고 덧붙입니다.

상처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는
보낸 세월에서 얻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심한 바람이 지나가도 꺾이지 않는
그 여린 풀잎은 지난날 그 바람을
이미 만나 보았겠지요.
2005-04-15
11: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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