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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일기


쑥 그리고 그리움
애린  2010-05-17 23:43:42, 조회 : 2,163, 추천 : 278




      쑥 그리고 그리움

      올 봄은 유난히 추었다. 그 덕에 결국 기지개 한 번 제대로 펴질 못한 채 다음계절을 만나고 있다.

      나는 봄이면 습관처럼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따사로운 오솔길을 걸어 한적한 들녘에 앉아 쑥을 캐는 것이다.

      몸집 작은 동생이랑 어느 낯선 논두렁을 무작정 헤매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 나이 아홉 살, 동생은 일곱 살이었다. 친자매였지만 우리가 한집에 같이 산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어릴 적 집안 사정으로 나와 오빠는 할머니 집에, 나중에 태어난 막둥이와 여동생은 부모님 곁에 살게 되면서 우리가족은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

      온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살던 곳은 곡성이라는 농촌이었다. 그 섬에서 그 섬을 떠나신 부모님을 그리워했듯이 그 섬을 떠나와서는 그 섬에 두고 온 많은 것들이 그리웠다. 할머니가 그리웠고, 옆집 살던 친구가 그리웠고, 친구랑 해왔던 많은 추억들이 그리웠다.

      그곳에서 내 첫 친구는 바로 일곱 살 박이 내 동생이었다. 그해 봄 나는 동생도 모르는 그리움을 찾아 논둑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쑥을 발견한 것이다.

      그때 난생처음 그 섬에서 할머니로부터 전수 받은 대로 동생에게 쑥을 캐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 지루해 하던 동생은 내가 하자는 대로 열심히 쑥을 캤다. 딱히 할 놀이가 없었던 우리는 다음 날에도 다음 날에도...매일 그렇게 캔 쑥은 부엌 한켠에  쌓였고, 그것을 엄마는 안집에도 나눠주고, 옆집에도 나눠주고 그래도 처분하지 못하자 그리 멀지 않는 장터에 내다 팔 생각을 하셨다.

      이윽고 새벽시장 종이박스위에 쑥을 담은 작은 바구니를 올려놓고 엄마랑 손님을 기다렸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의 쑥은 눈길도 주지 않는 거였다. 엄마는 포기하셨는지 조반을 지어야겠다며 일어서시면서 조금만 있다가 그냥 들고 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홀로 남아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괜히 머쓱 해저서 그냥 돌아갈 생각으로 일어날 찰나였다. 쪽진 머리를 하신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는 쑥 값을 물어보는 게 아닌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오십 원 받으면 되겠네?” 그러시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첫 수입은 어린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또 팔면 백 원...이 백 원...,,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 싶어 나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엄마께 말씀드리고는 더 팔아 오겠다며 남은 쑥이 있는 시장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더 이상 쑥을 사겠다는 손님은 오시지 않았고, 우리의 쑥 장사도 결국 50원이라는 이익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

      그 후에도 우리는 소꿉놀이 하듯 쑥을 찾아 여러 논두렁을 걸었다 그러다 검게 그을린 마른 덤불 사이 쑤욱 올라오는 쑥을 발견이라도 할라치면 그 섬에 두고 온 것을 찾은 듯 반갑고 기뻤다.

      그런데 참 희한했다.
      우리가 다시 그 섬으로 이사를 해서도 동생과 해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쑥 캐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동생과 곡성 논두렁에 두고 온 쑥을 찾기 위해 친구네 논두렁과 동백나무 아치터널을 지나도 한참 걸어가야 했던 마당 널을 갔었다. 그리고 솔밭 사이길을 오르면 아득하게 보이는 할머니의 밭 가장가리에 있던 오래된 무덤가에도 갔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우리 집 부엌에는 매일 쑥이 쌓였고, 그 쌓인 쑥을 처분하기위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섬에 있는 쑥을 모조리 산다는 것이었다. 그때 쑥 한 근에 20원 달래는 30원이었다. 그 덕에 쑥을 캐기 위해 섬 아이들은 참 많은 길을 만들고, 그 길을 따라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몇 해 전 베트남에서 살면서 남부 휴양지 판티엣 무이네라는 곳으로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밤이면 그곳의 정취에 어울리게 꾸며둔 리조트에서 묵고, 아침이 되면 그 주변 일대를 관광하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잠시 들렀던 사막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곳에서 바닷가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강렬한 태양 볕에 그을린 그 아이들은 여러 대의 슬라이드대를 들고는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그 슬라이드대는 한번 타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이었다. 사막 산 정상에 올라 그걸 타고 내려오면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와  베트남 풍경이 담겨있는 엽서를 사달라고 졸랐고, 또 어떤 아이들은 다시 한 번 슬라이드를 타 보라고 졸랐다. 그 아이들 틈에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몇 장의 엽서를 들고 머뭇거리던 그 아이는 어디선가 본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쑥을 캐고 싶었다. 그래서 푸른 초원이라도 스칠라치면 나는 있지도 않는 쑥을 찾았고 혹 비슷한 풀이라도 보이면 곧장 다가서곤 했다.

      올해도 물구꽃(산자고)은 피었는지. 병풍처럼 둘러싼 친구네 밭 동백나무는 여전히 분홍색 동백꽃을 피웠는지. 쑥을 캐기 위해 스쳤던 많은 것들이 그립고, 그 시절 함께했던 내 동생과 내 친구들 그리고 동네언니들이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 몹쓸 불치병 ‘그리움’을 앓다가 쓰러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추억이 없었던들 우리가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젖은 가슴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 옛날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행복할 수 있었을까.


      글/애린
      2010.5.17







얼음꽃
주일 미사를 끝내고 남산 소월길을
천천히 걸어 집으로 왔습니다.
촉촉한 그리움이 물씬 나는 글을 읽으며
지난날 저희 8남매의 추억 역시 한편의 영화처럼 흐릅니다.
해마다 행사처럼 쑥떡을 해 오다가
올해는 감자를 갈아서 쑥전을 해 먹고 있습니다.(쑥은 청계산 등산길에서)

언제쯤
조그만 땅을 준비해둔 정선에서
농사를 짓고
내가 지은 농산물 안고(막걸리 포함)정선 오일장에 나가 팔아 보는게
제 진짜 소원입니다.
2010-05-23
13:49:16

 


애린
얼음꽃님 연휴 잘 보내셨나요?
세월이 흐를 수록 저도 잘하는 것보다
해보고 싶은 일이 하고 싶어져요.
엄마계실 땐 그래도
그 섬 들녘에 나는 나물 맛도 보고 그랬었는데
많은 걸 잃어버린 것 같아요.

얼음꽃님
정선의 꿈 꼭 이루시길 바래요.
그때쯤이면 저도 길따라
그곳까지 갈 수 있을까요.
2010-05-23
22:3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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