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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따라 20년
산적두목  2009-09-20 16:37:50, 조회 : 1,991, 추천 : 334



    평사리 일몰/김자윤


    지난 여름 휴가 때 평사리 최참판 댁에 들렀습니다. 잘 알다시피 최참판 댁은 소설 토지에 나오는 최참판 댁을 하동군에서 꾸며 놓은 것입니다. 대하소설 토지만 하더라도 처음 시작은 우연이었다는 것을 생전 박경리 선생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어느 날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면서 악양 들을 바라보며 저 정도 들판이라면 천석꾼도 있었을 것이고 만석꾼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생각으로 구례군을 가게 되었던 것이고 토지면에서 소설의 제목인 토지를 따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건 어떤 이의 한 생각이 소설이 되고 다시 소설 속의 무대가 현실 속에서 자라 잡았다는 것입니다. 최참판 댁만 하더라도 처음 들렀을 때는 기둥부터 서까래까지 때가 묻지 않아 왠지 모를 어색함에 열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었습니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오래 전부터 자리잡고 있었던 것 마냥, 규모도 갖춰지고 세월의 더께가 쌓이다 보니 예스러움이 마치 민속촌을 거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 여러 부속 건물도 갖춰놓고 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찾다 보니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속에서 한 사람의 상상력이 얼마나 큰 산을 만들고 역사를 만드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줍잖게 사보기자로 활동한지 20년이 되었습니다. 또 고정칼럼을 연재한지 십 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십 여 년 전에는 지금처럼 컴퓨터에서 기사를 작성하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마감 날짜가 다가오면 새벽 네 다섯 시에 일어나 이백 자 또는 사백 자 원고지를 밥상 위에 올려놓고 씨름 하였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힘들다기 보다는 신선하다는 느낌이 더 앞섰으니까요. 한 밤중처럼 깜깜하게 막혔던 글이 새벽에 동이 터 오듯이 하나하나 실체를 드러낼 때, 그 기분은 작은 희열이었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이었습니다.

    서울에서 한 친구와 술 한잔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글을 다루고 있었기에 오랫동안 품어 왔던 생각을 늘어 놓았습니다. 신문이고 잡지고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우울한 소식뿐인데 좀더 밝은 이야기,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글을 볼 수 없겠냐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그 친구 왈 자신이 취재차 나갔던 정기구독을 제일 많이 한다는 잡지를 소개하며 한번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남이 아닌 자네가 그 역할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 때가 이천 년 말 현대모비스 시절이었는데, 마침 사보에 사내 필자 모집이 있었습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해 보겠노라 하고 ‘가슴으로 보는 세상’이라는 칼럼 명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첫 회 칼럼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무모한 짓을 했는지 금방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십 년 넘게 글을 가까이 했으니 일년 정도는 너끈히 꾸릴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하나로 도전 했는데, 앞이 깜깜 했습니다.  

    고민고민 끝에 겨우 첫 회 원고를 넘겼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한 달이 빨리 지나가는지요? 돌아서면 새 달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자나깨나 온통 칼럼을 어떻게 꾸릴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3개월이 지나고 나니 조금씩 반응이 나타난다는 전언이었습니다. 스물 두 개의 칼럼 가운데 선호도 조사에서 3위에서 7위를 오르내린다며 담당자도 안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해 2001년 12월에 본사에 들렀더니 울산공장에서 사보를 담당했던 이가 사보가 나오면 ‘가슴으로 보는 세상’을 제일 먼저 찾아 읽었다며 반가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런 사연들이 자양분이 되어 아직까지 이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사보 기자로 20년, 현대모비스에 이어 현대로템으로 이어지는 ‘살며 사랑하며’ 칼럼니스트로 9년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여러 사람들의 속 뜰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공간에 머무르고 있을지 기약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공감하고 응원해 주는 이가 있다면 뚜벅뚜벅 이 길을 가려 합니다. 고맙습니다.


    * 이 글은 현대로템 사보 편집진의 요청으로 칼럼을 쓰게 된 동기와 그간의 궤적을 돌아보는 것으로 꾸려 보았습니다.


    .



애린
들판은 온통
가을 곡 여무는 소리와
계절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사뭇 진지한 풍경으로 들려옵니다.

지나온 길목에
님을 알게되어 참 많이
기뻤습니다.
좋은 인연의 고리는
가슴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따뜻함에 있겠지요.

늘 건강하시고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09-09-20
23:55:23

 


산적두목
처음부터 20년이란
긴 세월을 염두에 두고
길을 나서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담당했던 이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다 보니
어느 순간 옴짝달삭 못하겠더이다.

"못 생긴 소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그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2009-09-22
19: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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