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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봄날은~간다!
애린  2009-05-18 22:15:17, 조회 : 2,031, 추천 : 409


      간밤부터 내린 비가 절정을 이룬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이런 날은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내달려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는데
      고것이 뭐였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것지요.

      에~ 헴! 고것이 뭐였냐믄요...
      바로 전날에 울 옆기기 회식자리에서 먹다만 도토리 막걸리였습니다.
      고소한 향에 더욱이 같이 마시던 아줌마부대의 평가에
      불현 듯 떠오른 얼굴이 있었는데
      그 얼굴은 밤비에 한참 청승에 몰입해 있을 마눌이었다나요...

      하여 저는 퇴근하기가 겁나게 집으로 내달렸습니다.
      비오는 날엔 우산쓰고 무작정 걷고 싶던 내 역마살 유혹일랑
      눈길도 주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울 옆지기
      며칠 전부터 달그닥 소리가 나는 냉장고를 분해하고 있데요.
      참고로 울 옆기지 별명은 홍반장,맥가이버입니다.

      내친김에 저는 냉장고에서 불필요한 재료들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정리할라치면 딱히 쓸데없는 재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선별하기가 여간 까탈스러운 것은 아니죠.

      그러나 저는 가끔은 아주 과감 합니다.
      오늘은 안주거리만 남기고 조금 시들한 것은
      모조리 쓰레기통에 양보하기로 했거든요.

      그리고 음식쓰레기를 들고 현관 밖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달달볶은 와인빛 머리가 비에 젖을 새라
      파란 모자를 쓰고요.

      이윽고 음식쓰레기를
      음식쓰레기통에 넣을 때었습니다.
      그런데....헉! 이것이가 뭣이당가요~
      제가 입고 있는 반바지를 본 순간,
      서늘한 한기가
      나의 온 감각기관을 파고들고 맙니다.

      그것은 지난해 울 시어머니가 주신
      불티나 팬티였습니다.
      말 그대로 사방에 불꽃이 일렁이고
      불꽃 숫자만큼 하트모양이
      발그랗게 달아올라 불티나 팬티라는 애칭이 붙어있지요.

      그것을 울 시어머니 아는 분이 중국 여행갔다가 사오셨다며
      울 옆지기에게 주시는데
      울 옆지기...
      그 촌시런거를 어찌입느냐고 어찌나 고집을 부리는지
      보다 못한 제가 집에서 입겠다며 받아왔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생각보다 겁나게 편한 것이 문제였죠
      한번 입어 보면 중독이 되버리거든요.

      누가 볼 새라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느라 숨이 차올라 죽겠는데
      그런 저를 본 울 옆기지의 한마디가
      내 가슴을 찌르고 맙니다.

      “아줌마도 어쩔 수 없는 아줌마~여~ㅋㅋ"

      아-아-나는
      이런 말을 듣기 위해
      마흔 새 해를 그렇게 줄기차게 달려왔나부다~
      갑자기 내 인생이 겁나게 허무해 부러서
      내 얼굴만큼이나 누리끼리하게 뜬 도토리 막걸리를!
      단 숨에 마셔부렀습니다.ㅠ.ㅠ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새들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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