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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그 너머에는
산적두목  2009-12-25 14:43:42, 조회 : 1,842, 추천 : 348


      가끔 옛 기억을 더듬어 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여러 곳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 가운데 군대생활을 했던 곳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또 지금 간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하고 궁금 했습니다. 마침 이번에 그 차이를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철원 지역을 27년 만에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

      약관 이십 대에 갔던 그 길을 지천명을 바라보는 지금에 와서 다시 돌아보는 것이니만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왜 진즉 찾을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 후회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떤 일이든 반드시 때가 있는가 봅니다.

      누구에게나 첫 경험이 소중하듯이 아직도 눈에 선연한 건 부대로 전입 가던 날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두고 당시 중대장의 말처럼 운 좋게 지프에 동승해 들어갔습니다. 부대는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있는 독립중대였습니다. 사방에 지뢰밭을 알리는 표시에다 단애 장애물과 오뚝이 장애물이 열병하듯 늘어서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왜 그리 으스스 하던지요. 금방이라도 밀림처럼 우거져 있는 지뢰밭에서 뭔가 튀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무엇 하나 정 붙일 것 없던 그곳에서 유일하게 안도감을 갖게 했던 건 바로 전차였습니다. 미루나무가 늘어서 있는 연병장 한 모퉁이에 턱하니 버티고 서 있는 탱크의 위용은 다른 어느 것보다 맘을 놓이게 했습니다. 순전히 녀석이 그 먼 곳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했으니 미워질 법 한데 오히려 위로가 되었습니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첫 번째 동계훈련을 나갔을 때입니다. 고참들이 들려주는 무용담에 지레 겁을 먹고 동계피복을 모조리 껴 입다시피 했습니다. 양말도 자그마치 세 켤레를 신었으니까요. 그래야만 추위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게 독이었습니다. 한꺼번에 여러 켤레를 신는 것이 아닌 자주 갈아 신어야 했는데 그걸 몰랐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제 모습이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겠지요.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삭막한 전선에도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눈이 녹아 질퍽해진 연병장울타리 앞에 파란 싹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는 순간 자연의 순리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산처럼 쌓아놓은 눈덩이는 채 녹지도 않았는데,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훗날을 그려 보기도 하고 희망을 떠 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일들이 알게 모르게 삶의 자양분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 보면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군복을 입고 있을 때는 분단의 상처가 아픔으로만 다가왔습니다. 월정리역에 녹슬어가고 있는 열차의 잔해를 보면 가슴이 아려왔고, 철책선 너머로 날아다니는 새의 무리만 보아도 부러웠습니다. 아무도 오가지 못하는 경계를 넘나드는 그 자체만으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한적이긴 해도 남북간의 왕래가 있으니 마냥 부럽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보초를 설 때면 나지막한 산자락에 도피안사라는 절이 보이는데, 지척에 두고도 끝내 발길을 들여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슴 한구석에는 사찰에 대한 궁금증과 왠지 모를 허전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가고 싶어도 매어있는 몸이다 보니 맘대로 이동이 불가했습니다. 그런 한을 풀기라도 하듯 이틀에 거쳐 두 번이나 가보았습니다. 딱히 무엇을 보고 느끼기 보다는 그곳에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순수한 심성을 간직하고 있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주인과 주방에서 일하는 이들과 경계를 허물고 어울렸던 순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장을 하다 배추 두통을 흔연히 내 주시던 양지리 아주머니, 가이드를 자청하며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하던 이, 모두가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라면 분단의 상흔인 제2땅굴, 월정리역, 노동당사 등이 더 이상 상처가 아닌 안보관광지의 부속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사람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철원은 지난날의 기억과 새로운 인연이 보태져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을 듯 합니다.    
        






애린
남녘의 겨울바람이 아무리 찬들
견줄만한 철원의 겨울은 아니었겠지요.
오늘 양말 두켤레신고 내복입고 상하 페딩차림으로
어딜 다녀온 줄 아세요.
강화도 어느 논에 다녀왔어요.
그곳에서 얼음썰매를 어찌나 재미있게 탔던지
허리가 다 뻐근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고난의 길이었다해도
우리 걸어온 많은 길에서
결국 진한 앙금으로 가라앚은 건
이리도 아련하고 그리운 그리움인 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참 좋은 글 감사하고
올해의 남은 시간들
잘 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2009-12-26
22:33:21

 


산적두목
누가 재촉하지 않아도
세월은 지난해 딱
그 시간만큼 흘러
도 한 해의 이별을 고하게 하네요.

이 속에서 한살씩 보태는
이는 드물 것이고
아무래도 한살씩 줄어드는
이들이 다반사겠지요.

돌아보니 지난날
그곳에 갔을 때
나이 보다 훌쩍 더 많은
세월이 흘렀더이다.

좋은 기억으로
한해 잘 보듬어 안으소서...
2009-12-28
06:15:55

 


애린
산적두목님
사보 잘 받았습니다.
젊은 날 찍힌 청춘과 함께요.
한결같은 마음
언제나 돌려드릴 수 있을련지...
아득하기만 하옵니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떼먹는 것이 제 전공이라.ㅎㅎ

1,2월
참 나쁜 나날을 보내고
맞이할 것 같습니다.
건강하소서......
2010-01-17
00: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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