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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아버지의 호출/산적두목
애린  2010-05-26 00:30:41, 조회 : 1,543, 추천 : 309



      연세가 많은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다 보면 얘기치 않은 일에 조바심이 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지난 어느 날도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앰블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원을 드나드는 경우가 한 두 번은 아니었지만 매번 마음이 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서둘러 도착해 보니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었습니다. 맏아들을 보니 맘이 놓이셨는지 다짜고짜 퇴원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담당의사와 상담을 해보니 웬만하면 하루 이틀은 지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도착하기 전에 했던 MRI를 비롯한 몇 가지 검사를 한 소견을 말하며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아버지께 차근차근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며칠이 될지 모르지만 입원해야 한답니다.” 하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무조건 퇴원 먼저 하고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퇴원했다 다시 오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 뜻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하고 짐을 챙겨 나왔습니다.

      성화에 못 이겨 병원 문을 나왔지만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빈 속으로 지낸 터라 기력도 추스를 겸 삼계탕 집으로 모시고 가 닭고기를 발라 드렸더니 서너 숟가락 들자마자 스르르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응급실을 거쳐 바로 입원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미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라 나이 때문에 따로 놀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방을 쓰게 된 환자나 보호자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올해 아흔 다섯인 아버지는 호적까지 다섯 살 더 많게 실려 있으니 100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어디를 가나 명찰만 보면 쉬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그치고 약 기운 때문이었는지 자정이 가까워 올 때까지 한 숨 푹 주무시는 것이었습니다. 간간이 이마를 짚어 보고 손발을 만져 봐도 별 변화가 없었습니다. 힘없이 누워있는 아버지의 소나무 등걸처럼 마디진 손을 잡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어렸을 적엔 호통도 자주 치시더니 이젠 호통 소리를 들은 지 오래입니다. 단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어쩌면 좋겠냐며 의논만 할 뿐입니다. 아버지의 마디진 손,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살은 단지 세월에서 오는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흔적 어느 자리에는 내가 지운 응어리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한 때는 아버지가 원망의 대상이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아버지 세대에서야 오죽 했겠습니까? 해주고 싶어도 못 해주는 것이 더 많았겠지요.

      시간은 어느새 세시가 되었고, 기력을 회복한 아버지는 빨리 집에 안가고 뭐하냐며 다그쳤습니다. 전날 병원에 오기 전에 손질 하다만 마늘을 소나기라도 내리면 다 젖게 된다며 빨리 가서 마무리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급해도 병원에 올 때는 맘대로 와도 나갈 때는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렇게 밤새 보채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던 것은 아무 말씀도 못하는 것 보단 훨씬 맘이 가벼웠습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일요일이라 가 퇴원 형식을 빌어 병원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퇴원을 하니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그래서 본가에 가는 길에 막걸리를 사다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나눠 마셨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긴급 호출은 서서히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마다 빠지지 않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서 죽고 싶다”고 그러면 또 똑 같은 대답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애태우지 않아도 살 날 보다는 돌아가실 날이 더 가까우니 사는 날까지 맘 편히 지내시라”고……




애린
5월 23일
그동안 가슴으로 보는 세상을 열어주신
산적두목님 부친께서 ( 향년96세) 별세하셨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산적두목님 힘내세요.
2010-05-26
00:37:36

 


매너 짱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산적두목님 힘내세요.
2010-05-27
21:38:17

 


산적두목
지난해 이맘 때 연재하고 있는 칼럼에 기고 했던 글입니다. 아버님은 22일 저녁 10시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저와 아내 그리고 손자까지 다 알아 보시고, 저와 함께 병원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새벽에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운명[殞命] 하셨습니다. 누구에게도 대 소변 한번 받아내게 하지 않으셨으니 많은 이들이 복이라 하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러 님들의 맘을 무겁게 하는 것 같아 죄송하고 위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0-05-29
07:32:27

 


애린
고생하셨어요. 산적두목님.
약간의 여유를 찾으실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소식 주시어 감사하고
전화드리겠습니다.
2010-05-30
23:18:27

 


미리내
그랬었군요. 자주와서 음악감상도 하고
눈팅도 하고 가는 미리내입니다.
전 늘 죽을때 일주일안으로만 아프고
죽게 해 달라고 기도드린답니다.
우리 엄마 3개월 편찮으시고 가시는데도
넘 힘들어 보여 안타까웠거든요.
저희 시아버님께서 1년6개월을 누워만 계시다
5월 20일 밤 10시 30분 소천하셨는데...,

우린 다들 우리의 부름받아
세상 뜰때를 위해 준비 해야 할 거 같아요.

산적두목님 천수를 누리신 아버님이시지만
보내 드리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힘내셔요.
2010-05-31
16:49:07

 


산적두목
애린님, 매너짱님, 미리내님 고맙습니다.
오늘 경조 휴가를 마치고 첫 출근 했다 왔습니다.

여기 저기 인사 다닌다고 한나절을 돌아 다녔더니
발바닥에 불이 날라 하더이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위로주라 하여
가볍게 한잔 하고 들어 왔습니다.

내일 또 내일이면 좀 나아지겠지요.
안녕히...
2010-05-31
23: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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