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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여행기

이종희	2004-10-04 13:22:33, 조회 : 2,315, 추천 : 477

속초 여행기
칼럼니스트/윤미영

어머니는 짐 가방 안에 무언가를 소중히 개켜서 넣으셨습니다.
하루를 자더라도....어머니의 나지막한 말소리를 통해 그 가방에 넣은 것이 무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전에 홍콩에서 사다드린 꽃프린팅의 잠옷이었습니다. 저는 피식 웃으면서 나무라듯이 말했습니다. 무슨.....신혼 여행가우? 그리고나서....그 말을 후회했습니다.

당신 생전에 처음인 딸과의 여행이 어머니에게 신혼여행보다 더 설레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게다가 행선지가 속초인 것입니다.속초는 어머니에게 추억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제는 날개를 달고 뿔뿔이 흩어져 자기 둥지를 틀은 자식들이 어린시절 깔깔거리며 달리던 해변가가 있는 곳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수 차례 두 분이 함께한 여행지 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속초 바닷가 소나무 숲이 보이는 고전음악 다방에서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듣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가끔 이야기하시곤 합니다. 설악산을 좋아하신 아버지를 따라 수도 없이 속초 땅을 밟은 어머니의 추억 속에 가장 생생한 것이 찻집에서 듣던 바이얼린곡이라니........아마도....어머니는 그때의 행복했던 분위기를 마음속에 담고 계시는 듯 합니다.이후 길고 긴 아버지의 병수 발을 그 추억하나에 의지해서 버틴 것은 아니었을지.... 지금은 문을 닫고 없는 그 찻집.....어머니와의 여행에서 그곳으로 모시고 갈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습니다.

동명항

일찍 떠나려던 계획이 빗나가서 일요일 오후 5시30분 경에서야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속초로의 출발은 늘 그랬습니다. 수 차례 그곳을 갔지만 늘 도착은 늦은 밤시간 일 때가 많았습니다. 저는 미리 빌어온 “콜드마운틴” 비디오 1,2권을 가방 속에 챙겨넣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어머니에게 전부터 보여드리고 싶었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강북 강변도로를 타면서 순조로운 차의 흐름이 우선 좋았습니다. 추석 전에 행선지를 속초로 잡았을 때 막힌 경우가 한번도 없었다는 경험도 있지만 최근 들어 증가하기 시작한 명절 여행 인구를 생각하면서 은근히 신경이 쓰였었거든요.사실 한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추석 당일이나 추석 전날 한계령을 넘어가는 차는 아주 희박해서 한번은 늦은 밤시간에 한계령을 넘는데 오가는 도로에 차는 오로지 제 것 한대였고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무척이나 으스스하던 기억이 있습니다.라이트를 끄면 정말 칠흑 같은 어둠뿐인 산속....그런데 한계령 정상부근에서 저는 정말 심장이 멎을뻔 한적이 있습니다. 그 길을 비를 맞아가면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나........저는 그 사람 뒤를 따라가면서 라이트를 비쳐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그를 뒤에 남겨두고 굽이 길을 내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한계령하면......비 내리는 추석날밤 그 깊은 어둠 속을 자전거를 끌면서 걷던 사람이 생각납니다.

코스모스 군락지

우리가 중간에 쉰 곳은 휴게소가 아니었습니다.어머니와 저는 사실.....속초로의 여행을 깜박 잊을 만큼 그곳에 빨려 들었습니다. 어디냐구요? 워커힐에서 구리로 가는 길옆의 고수부지에 운동장만한 코스모스 군락지가 연이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정말 장관이더군요. 예전에 소피아로렌이 나오는 해바라기라는 영화에서 러시아 평원에 펼쳐진 해바라기 군락지를 보면서 느꼈던 감탄사를 똑같이 밷어 내게 하는 풍경이었습니다.우리는 도로변에 차를 세워놓고 아이들처럼 좋아라 하면서 코스모스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길 떠나는 중간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한 멋진 곳이었습니다.

양수리를 지날 때까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서 한강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차의 흐름은 아주 순조로웠고 새 도로도 환상이었습니다. 예전에......국도를 타고 가면서 앞차가 느리게 가면 속수무책 늘어지던 그런 길이 아닌 것 입니다. 원통 시내도 거치지 않고 직선도로로 죽 밀고 가는 그 기분이란....물론 중간 중간 아직 공사중인 도로와 만나는 불편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 속초는 일일 여행권으로 확실히 자리매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는 미시령으로 넘었는데 짙은 구름 속을 엔진브레이크를 이용하면서 천천히 뚫고 내려왔습니다. 머리위로 나선을 그리면서 짙은 구름속에 희미하게 비쳐나오는 차량의 불빛이 무척이나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겨내더군요.S F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속초해안 전경

서울 뺨치는 번화함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속초시내를 가로질러 예약한 호텔을 찾아갔습니다. 미리 예약해둔 호텔은 모 드라마 촬영을 했던 곳인 만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객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밤바다가 손에 잡힐 듯 했고 호텔 옆의 소나무 숲은 어머니에게 그 찻집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연상시켜 드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부산의 조선비치호텔에서 바라보던 바다풍경과 비슷하다면서 어머니도 무척 만족스러워 하셨습니다. 사실.....제가 예약한 목적은 침대 위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정초에 하도 멋진 일출을 감상했던 터라 어머니에게도 그 장면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호텔 테라스에서 직접 바라보시면 더 좋을 듯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비까지 뿌린 흐린 날씨로 미루어.......일출보기는 어쩐지 어려울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일출이 아니더라도......바다풍경이 망망하게 펼쳐진 테라스에서 어머니와 마주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좋았습니다.

대포동

밤 10시쯤 우리는 저녁식사도 할 겸 호텔앞 너른 해변에 간이형태로 늘어서있는 횟집을 찾았습니다. 시간은 밤 12시까지고 파라솔 옆에서 조개구이도 해주고 맛난 매운탕 주문도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광어 한 마리와 놀래미 한 마리를 청했는데 2만원에 주더군요. 대포항보다 싼 가격이었습니다. 청하 한병을 시켜 우리는 몇 번이고 건배하면서 마셨습니다. 술을 못하면서도.....어머니는 딸과 대작하기 위해서 분위기를 맞추고 있었습니다. 무슨 보약 따라주듯이 제 잔이 비기가 무섭게 두손으로 받쳐서 술을 따라주는 어머니를 저는 몇 번이고 새삼스런 눈길로 바라보았습니다. 담배는 안된다....대신 술은 조금해도 괜찮다....어머니는 성년이 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었지요....하하....왜 술은 금하지 않았는지....저는 그것이 생각할 수록 신기하기만 합니다.어머니처럼 소심하신 분이 말이죠.

청한 한잔을 앞에 놓고 약드시듯 몇 번을 나누어 마신 어머니의 발그레한 얼굴이 소녀처럼 이뻤습니다. “그래.....가끔 술도 이렇게 마시곤 하자꾸나....누구보기 부끄러운 시절도 아니고.....” 몇잔을 들이킨 저는 말없이 가만히 있는데 한잔도 잘 못마시는 어머니 혼자 기분은 다 내고 계셨습니다.

설악동

다음날......새벽 바다와 하늘 사이 짙은 잿빛 구름이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붉은 기운이 배어나올 뿐. 예상대로 일출보기는 실패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너무 근사하다면서.....계속 감탄사를 연발하셨습니다. 생전 처음 오신 분처럼....하긴.....속초에 오시면 숙소는 대부분 설악산이나 오색쪽에 잡으셨으니까요. 소나무숲에서의 산책과 오픈카페에서 차마시며 바다 바라보기에 빠져 있느라 늦게 출발한 탓에 설악산 오르기는 실패였습니다. 설악산 초입부터 거북이 걸음으로 줄을 늘어선 차량을 보아하니.....설악산까지 진입하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릴 듯 했습니다. 관광인파가 늘었다는 증거겠지요. 깊은 가을에 숙소를 아예 설악동에 정한 후 다시한번 모시고 오리라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영랑호의 유람선을 승선하기 위해 속초 엑스포항으로 향했습니다.

영랑호

유람선 승선전 30분 가량 여유가 있길래 엑스포항 옆에 자리한 이마트에 들어가서 어머니가 드실 송편과 전을 조금 샀습니다. 이마트의 규모와 번화함을 보니 속초의 오늘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차에 미리 준비해둔 과일이며 음료 초콜릿 ,과자등은 손도 대지 않던 어머니가 송편과 전은 맛나게 드셨습니다. 역시 어머니의 식성은 제 손바닥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유람선 승선에서 인상적인 것은 망망한 바다....은근히 높은 파도타기의 묘미....햇살에 반사되는 은빛물결의 오묘함보다.....던져주는 새우깡을 향해 무차별 덤벼들던 엄청난 숫자의 갈매기떼 였습니다. 순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그들의 그악함을 바라보면서....히치콕이 왜 ‘새’라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악착을 떨면서 덤벼드는 광란의 몸짓을 바라보고 있자니....마음바닥을 타고 스멀스멀 멀미가 밀려왔습니다.

오후시간은 해변가를 좀 거닐다가.....다음 목적지인 용대 휴양림을 향해 다시 미시령을 넘었습니다. 날씨는 새벽의 구름낀 하늘에 비해 청명하고 맑았습니다. 어머니의 피곤한 표정을 살피면서 용대리의 휴양림속에 자리한 통나무집으로 곧바로 찾아가 여장을 풀었습니다. 오후...우리는 산림욕장과 산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소담스럽게 핀 들국화.....수런대는 듯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을 느낌을 함초롬히 품고있는 단풍들기 직전의 나무들.....무엇보다 달큰한 공기....아이처럼 좋아라하면서 수다를떨던 중간에 ...아....세월이 참 빠르구나...하는 어머니의 탄식에 잠시 마음이 저릿했습니다. 이런델 놔두고 뭐하면서 좋은시절 다 흘려보낸건지....이야기가 그런쪽으로 진행되려하는 순간 저는 못들은척 얼른 앞서걸었습니다.

미시령 고개

용바위식당에서 황태요리로 식사한 후 어머니와 친구들을 위해 황태며 건어물 몇가지를 사서 챙겼습니다.
용대리의 밤은 참 고요합니다. 나무냄새와 축축한 땅냄새가 느껴집니다.
우리는 그날밤 챙겨갔던 안소니 밍겔라의 영화 콜드마운틴을 봤습니다. 비디오시청 겸용의 텔레비전은 작았지만 그런대로 좋았습니다.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신앙에 버금가는 믿음으로 전쟁터로간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 (니콜 키드만)과 그 여인을 위해 길고도 험한 길을 따라 귀향하는 한 탈영병(주드 로)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고전적인 영화속에 푹빠진 우리는 밤 새도록 영화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녘에서야 잠들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니콜 키드만처럼 하얀 피부와 강인한 이미지의 처녀시절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어머니는 킴 노박이며 비비안 리며 잉그릿드 버그만을 좋아했던 시절로 돌아가 기억속에 아로새겨진 무수한 명장면들을 수수한 목소리로 들려주었습니다.아....영화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어머니.....저는 문득.....제가 한번도 어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음을 기억했습니다. 왜.....저는 늘 아버지만 닮았다고 생각했을까요?
생김새도 어머니쪽이고....식성도 그렇고.....목소리도 그렇고.....심지어 영화 좋아 하는 것까지 비슷한데도.....왜 저는 한사코.....아버지 한분의 딸인 듯 착각하면서 살아왔던 걸까요? 특별히 어머니와 사이가 나쁜것도 아니었고.....어머니가 늘 제곁에 아니계셨던 것도 아닌데......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저는 언제나 아버지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연민과 슬픔에 젖어서..... 저는.....잠든 어머니의 가슴께로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드렸습니다. 딸이 사준 꽃프린팅된 잠옷을 입고 낯선곳에서 딸하나만 믿고 평온한 잠에 빠진 어머니.....저는 문득.....같은 상황이 되었을때 제게는 저를 지켜볼 딸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고.....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아침 일정을 취소했습니다......늦도록 어머니 곁에 누워서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에서요. 그리고.....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아직은 이렇게 다니실만 할때....자주 여행을 하리라구요. 다음날의 일정도 있었지만......속초의 시간은 여기까지 입니다.지루한 여행기 읽으시느라.....수고하셨습니다.

thanksgiving - Jorge Winston

Joy - Jorge Winston
http://www.sokchotour.com/ 사진출처및 속초의 모든것

애린

쉽게 화를 내지 않으시던 아버지가
저는 참 좋았습니다.
아득하기만 했던 낭떠러지 앞에서도
어쩜 그렇게 느긋하실 수 있을까…
늘 한결 같은 아버지 안에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그 큰 나무도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는 다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나무 가지 하나 하나가
울타리 되어 바람막이가 될 때
엄마는 해가 되고 달이 되어
밤낮으로 우리를 비추고 있었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의 흔한 존재를
알아 볼 수 없었던 거구요.

2004-10-04
14:26:18

빡^ 달마

사람사는 냄음이 풍기는 정겨운 이야기가 따뜻합니다.
오색약수터(주전골) 칠성장어. 백담사아래(용대리) 황태구이.
싱싱한 횟거리시장 .. 생선파는 아낙들의 능청이 정겨운 동명항. 대포항 등.등..
눈에익은 풍경들과. 애잔한 모녀간의 多精에 취해...!! 자욱을 남겨봅니다 ..
이종희씨 모녀간 함께 건강하시고 .. 행복하세요 ..`♪~♬.^ .. ☆ ..!!

<"옴마 情이 그리운 .. 해병대.!!>

2004-10-04
21:24:49

애린

빡달마=코주부=그리운 옴마정
옴마=윤미영=속초 여행
애린=이종희=홈지기

맞쬬! 빡 달마님.ㅎㅎㅎ

2004-10-05
11: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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