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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하이,붕타우/걸어보지 못한 길
이종희  2005-05-31 12:40:51, 조회 : 1,616, 추천 : 403



    롱하이 비치 리조트

    호치민시 미술대학교에서 그림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에 옆집아낙과 무작정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결국초청장이 없었던 우리는 아쉬움만 남긴 채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지만요.


    롱하이 비치 리조트 앞 바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 아낙은 늘 배움에 목말라합니다. 오늘도 그녀는 집과 대학과의 거리를 계산하며 이곳에서 5년만 더 있게 된다면 5년제인 미술대학에서 공부를 더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돌아오는 길, 마음만큼 배가 고픈 우리는 잠시 허름한 베트남 음식점엘 들렸습니다. 그곳에서 껌승(숯불에 구운 양념돼지고기)을 한 그릇씩 시켜 먹고는 그래도 가시지 않는 허기에 한 그릇을 더 먹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하필 점심때라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고 갔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생각보다 느긋한 조찬을 즐겼답니다.

    어느덧 향긋한 열대 과일과 진한 커피 두 잔이 우리의 테이블 위에 놓여졌습니다. 어느새 어둑해진 거리에는 스콜이 쏟아지고 있었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만 더 시간을 축낼 생각이었는데 오늘의 스콜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여유를 부리고 있었지요. 그리고 한참 만에 우리는 환상적인 먹빛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는 하늘을 보게 되었답니다.


    롱하이 비치에서 만난 도마뱀


    롱하이 해변에서 밤사이 떠밀려온 조가비를 줍는 아낙들

    지난달 연휴를 맞아 남쪽 바닷가 롱하이로 피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호치민시에서 약 130Km쯤 떨어진 붕따우에 들러 그곳의 유적지를 돌아볼 계획을 세웠지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더욱 맹렬한 기세로 쏟아지는 폭염에 압도되어 일행들은 모두가 리조트가 있는 롱하이로 곧장 내달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 중 미국인이 세웠다는 그리스도상은 붕따우 초입에 있었고, 혼자라도 갈 생각이 있으면 다녀오라는 한 일행의 말에 나는 마치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4차선 도로변을 가로질러  언덕을 향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썰물 때 걸어서 건널 수 있다는 붕따우 혼바 섬

    이윽고 땅에서 올라온 열기로 온 몸에선 구슬땀이 흐르고, 한 뼘의 태양이라도 가려볼 생각으로 쓰고 있던 양산 사이로 태양 볕은 더욱 기세 등등하게 내 살에 꽂혔습니다.

    계단을 오를수록 호흡은 더욱 빨라졌고, 이러다 쓰러지지 싶은 생각에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땡볕아래 바스락거리며 달려오는 소리를 저는 듣게 되었습니다. 분명 그 소리는 절대 행복과 절대 불행이 동시에 허물어지는 소리였으며 폭염의 쇠락을 의미하는 소멸의 기운이기도 했지요.


    붕따우 바이투이반 해변 도로

    15분이면 오를 수 있다는 그곳을 그만큼의 시간을 더 보내고야 마침내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바람은 그동안 감정에 궁핍했던 저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냥 미련 없이 다가와 부서졌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기분에 오르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 기분에 그 말을 하고도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높이가 30m인 그리스도상


    그리스도상과 성모마리아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그리스도상 입구


    계단과 함께 이어지는 꽃 길과 망망대해 남중 국해

    어느덧  한쪽에 신발을 벗어두고 30미터쯤 된다는 거인 예수상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지요.저 아래에 기린처럼 목을 내밀고 있을 일행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런 나를 잠시 머뭇거리게도 했지만, 언제 다시 오랴 싶은 내 마음을 가로막지는 못했답니다.


    붕따우 산과 시내

    비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 아래 비교적 넓은 아래층 벽은 온통 예수의 조각과 그림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 몸을 벽에 밀착시키고야 간신히 내려오는 사람들을 비켜주며, 문득 올라오는 계단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몸집 큰 여인이 생각났습니다.


    산에서 내려다본 붕따우 시내

    마침내 저는 그리스상 발코니에 섰습니다. 저 아래 저 넓은 도시가 저 새파란 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저는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었을까요. 바다가 먼저였는지 하늘이 먼저였는지 서로 공평하게 살을 맞대고 이제는 떨어질 수 없는 저 광대무변의 우주, 저것이야말로 우리가 늘 목말라하던 그 하나의 사랑은 아니었을까요…그럼에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애틋한 사랑에 빠지고 싶은 것은  아직도 저는 사랑의 신비를 믿기 때문입니다.


    붕따우 전경/ 바이투이반 해변

    바스락거리며 오고 있던 계절은 이미 제 곁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계절은 도착했던 시간만큼 떠나고 있었군요. 소멸해가는 계절에 남겨둔 추억이 때로는 어둔밤 박꽃처럼 내 안에 피어납니다. 가끔 추억에 젖어 보고 싶은 까닭은 다시는 같은 생각으로 그 길은 걸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일년내내 해수욕을 할 수 있는 붕따우 바닷가


    걸어보지 못한 길, 내가 그 길을 걷는 동안 누군가는 망망대해 칠흑 같은 세상을 밝혀주던 나의 등대였음을 저는 기억합니다.


    낭떠러지에 핀 부겐베리아






    .


    걸어보지 못한 길...기사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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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린
사진이 너무 많아 조금더 수정 후 이웃홈에도 올려드릴 생각입니다.
사진은 포토에세이방에 들어있습니다.
행복한 시간 되세요.
2005-05-31
13:27:10

 


애린
이웃홈에 올라온 답글들을 옮겨왔습니다.

서치규: 여유있고 당당해보이는 도마뱀의 모습에서 미국이란 골리앗을 이겨낸 조그마한 체구의 호치민을 보는듯 합니다.전승후 그 거대한 예수상을 바라봤을 호치민의 가슴속엔 냉온의 강이 동시에 흘렀을까.무신론자인 그의 머리속엔 어떤상념이 교차했을까.궁금하기 이를데 없습니다.자주뵙기 바랍니다. -[06/02-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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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사진으로 느끼는 이국의 정취와 글이 안내하는대로 따라가다보니 마음이 참 편안하고 행복해져 오는군요,, 절대 행복과 절대 불행이 동시에 허물어지는 소리가 작은 스콜(??)로 풋여름의 서막이 열린 이곳에 까지 전이되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의 올 여름은 100년만에 오는 폭염이라며 겁을 잔뜩 주더니만 더위 먹은 언론의 오보였다나요,, -[06/02-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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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두목: 그림 좋고 글 좋고 가 보고 잡네. 그래도 못 간께 헐 수없이 눈요기라도 허게 종종 올려 주시요.
-[06/03-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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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이 나라 해방과 통일의 주역인 호치민이 전쟁 중에 이미 생을 마감했다는 말을 듣고 저도 놀랐었네요. 그래서 그분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 선물 받은 이 호치민(사이공)이라는 도시에도 올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이 나라 영웅이고 이 나라 사람들의 신앙 같은 존재지요. 남중 국해의 축복을 위해 세워 졌다는 거대 예수상을 어떤 사람은 1971년에 세워졌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1974년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5년 4월 30일 이 나라는 마침내 통일을 이루었고요. 통일 30주년을 맞았던 지난 4월 전야제 때 호치민시는 동서남북, 사방에서는 현란한 불꽃들이 밤하늘을 수놓았답니다. 서치규님 여전히 건강하시지요? -[06/03-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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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파도님 안녕하세요. 언젠가 신문에서 도올님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었지요. 그분 말씀에 언론에서 우리국민들을 너무 학대를 한다고요. 너무 비관적인 생각들을 일부로 고른 것처럼 보도를 한다고요. 파도님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세요. 그리고 주신마음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06/03-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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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산적두목님 한국도 많이 더워졌지요. 어느새 아까시 꽃은 지고 있을 거구요. 가슴 따뜻한 이야기… 늘 잘 읽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06/03-16:47]-
2005-06-03
17:02:38

 


마린
애린님 여기가 애린님 궁이였^군요
너무나 에쁘고 아주 고운 사이트 이군요 저는 베트남에 관심이 아주많거든요
그래서 인지 님의 홈이 아주 정다워 짐니다
사진도 참좋구요 음악 이 일품이군요 감사함니다 <<<해 병>>>
2005-08-08
13:39:18



애린
마린님 뒤늦게 님의 흔적을 봅니다.
어느덧 베트남 생활을 접게 되었습니다.
고여있는 이 순간보다는
다시 흘러갈 내일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마린님 방문해 주셔서 많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필~씅!
2005-08-12
17:5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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