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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청룡이여~
애린  2009-01-16 23:08:03, 조회 : 2,195, 추천 : 445

    
 

"아! 청룡이여" 출판기념행사

2009년 1월13일 오후3시 서대문 농업박물관 겔러리 1층에서 "아! 청룡이여" 책자발간 출판기념 및
이상기 화백(청룡) 개인전을 개최하는 행사가 있었다. 많은 내빈과 천자봉 가족들 그리고 육해공 월남전 참전용사들이
자리를 함께하여 뜻깊은 만남의 장을 열었다. 월남전과 한국 vietvet 전우를 환영해주신 천자봉 여러분 고맙습니다.
홈을 통하여 교류를 했던 천자봉 쉼터의 故"장한우" 후청룡이 지켜보며 흐뭇해 했을 것 같습니다.

































책이 2권인데 월남전 격전지를 5회 탐방하여 그 방대한 자료를 수록한 상당히 잘 만들어진 책자입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최남열 전우 몫까지 2셋트를 사서 들고 오는데 팔 빠지는줄 알았습니다.^^*
특별히 초대장을 보내주신 김세창님, 도공식님, 감사드리고, 울산 권용학님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아울러 모든 천자봉 가족여러분 고맙게 생각하오며, 안케 전우 및 vietvet 전우님들 수고했습니다.

(촬영: 월남전과 한국 www.vietvet.co.kr /최진현)

      




애린

    이제는 말할수있는 청룡 실록 ~ - (1부) - 악몽의 베리아로


    아 베리아 ~ 베리아여 !!!!!
    비오는 소리에 눈을 뜨려고 하니 온 몸이 압박되어 있는 듯 하다.
    희미하게 보이는 미 여군 간호장교가 미소짓고서있다.
    몸을 움직이어 보려하지만 부자연스럽게 온몸이 묶여져있다.
    입에는 산소호흡기가 씌워져있고 몇 가닥의 링겔 줄이 나의 몸으로 이어져있고
    숨 쉬는 것조차도 힘겨워하는 나에게 간호원은 손바닥 위 하얀 종이에 써있는 메모지를 가리킨다.
    말은 하지 마시고 눈으로 예는 한번 깜박거리고 아니오 는 두 번 표시만 하라고한다.
    -- 제가 보이시나요? - 한번 깜박
    -- 제 말이 들리나요? - 한번 깜박
    -- 오늘이 몇 칠인지 아나요? - 두 번 깜박
    "오늘은 11월 15일입니다,병원에는 11월 8일 들어왔습니다.
    지금 밖에는 비가오고 있습니다.
    모든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말을 하려고 하지마세요 지금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귀하는 세계평화를 위해 큰일을 하셨습니다.
    여기는 미 해군 병원선입니다.
    잠시 기다리면 한국군 군의관이 오십니다"
    내 몸 상태는 어떤지 궁금하다.
    고개를 들 수도 움직일 수도 없고 온몸이 마비되어 있는 거 같았고 다리조차 움직이지가 않는다.
    눈물이 난다 흐린 눈 사이로 한국 군의관이 서있다.
    눈물을 닦아주고 손을 잡아주면서 안심하라고 한다.
    그냥듣기만 하라하고 이야기를 해준다.
    내가 일주일 만에 깨어 난 것 이라고 한다.
    수술은 잘되었고 호흡기만 제거하면 퀴논에 있는 한국군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하고
    비행기를 탈수 있게 되면 필리핀 클락크 미군 공군기지 공항을 거쳐서 귀국하게 된다고 한다.
    3일후면 후송 될 것 이라고 한다.
    같이 온 전우는 앞에 있으니 보라고 하면서 머리를 조금 올려 들어준다.
    앞을 보니 김 일병 두 놈이 나란히 누워서 있고 나를 보더니 울면서
    박 수병님 하고 소리 내어 울면서 이제야 깨어 나셨군요 못 일어나시는 줄만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그들은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군의관 말로는 한 해병은 두 다리가 절단되었고
    또 다른 해병은 다리 하나와 팔이 절단되었다고 한다.
    오 ~ 하느님!! 절규의 몸부림을 친다.
    움직이지 않는 나의 팔다리도 그럼 저들과 같이 잘려나갔단 말인가 ?
    갑자기 무서움과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몇 시간 후 그들은 퀴논으로 후송된다고 한다.
    입을 막고 있는 산소 호흡기 때문에 그들과 말 한마디 못해보고
    눈물로만 주고받고 그들은 떠나가고 혼자 서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가고 싶은 생각에 언제나 가려나 갈수는 있을까
    간간이 들려오는 포성소리도 이제는 몸서리치게 무섭다.


    >
    (장한우 후배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려낸 그날의 베리아 현장)

    1970년 11월 8일 베리아 반도 청룡 3대대 10중대 3소대
    작전 나온지 10여일이 지나고 소대본부에서 약 4㎞ 떨어진 3분대에
    실탄과 식량보급을 위해 두 명의 김 일병과 같이 3분대로 향하고 있는데
    비가 많이 온 관계로 길이 없어 수로로 가야하니 정말로 힘이 들어서 고통스럽다.
    앞서가던 김 일병이 너무 힘이 드니 능선으로 가자고한다.
    정말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너무 지쳐버리면 갈수도 없으니 확인 또 확인하며 능선으로 오르는 순간
    쾅하는 폭음과 함께 모두가 나동그라지고 두 김 일병은 내 다리하면서 목소리 높여 절규하는데
    오 ~ 하느님 어떻게 이런 일이 --- 정말로 아비규환이다.
    나는 황급히 후방에 알리는 무전을 치려하나 무전기는 산산조각이 나고,
    두 김 일병에게
    -- 조용히 하라 적에게 노출 되면 끝이다 -- 하며 소리 처 보지만 그들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순간 나는 내 뱃속에서 창자가 터져 나오고 - 입으로 핏덩어리가 올라와
    나도 당했구나하는 순간 땅에 나뒹굴고 본능적으로 총을 끌어당겨 붙잡고
    몸에 지니고 있는 실탄을 후방을 향해 마구쏘아 올렸다.
    그리고 서서히 내 몸은 무너지고 있었고
    영화 필름처럼 스쳐가는 고향의 어머니의 미소
    가족들 모습을 뒤로하고 정신을 놓아 가고있었다.
    순간의 시간이 흘렀는가 --
    흐린 눈 사이로 베트콩들이 확인 사살을 하려고 나에게 총을 겨누고 노려보았다
    나는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고
    -- 이제는 내 삶도 끝나는데 후방 지원부대는 왜 아직도 오지를 않고 무얼 하고 있단 말인가 --
    섭섭한 생각을 하면서 -- 가까이 들려오는 미군 헬리곱터 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차가운 냉기에 다시 정신이 들고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눈을 떠보니 군의관이 내 몸을 닦아내고 있었다.
    모래가 많이 묻어서 냉동을 시켜서 모래를 제거하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몸이 차가울 테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깨어나는 날 왜 비 는 그렇게 내리고 있었는지
    그날 같이 당한 그들은 떠나가고 지금까지도 못 만나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한번은 만나고 싶다.
    3일후 나는 퀴논 야전병원으로 후송되고 귀국하기 위해서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고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이 다리였다
    그리고 내 몸 상태를 아무도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치료만 잘 받고 귀국하면 알게 된다고 한다.
    -- 심각한 것일까? 아니면 별거 아닌지-- ???????
    하루 하루가 답답한 마음으로 빨리 귀국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것을 알게 되는데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만 있으니 하는 일은 잠만 자는 일인데
    그날도 회진 도는 시간에 잠결에 잠시 눈은 안 뜬 상태에서 군의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나는 당혹감에 혼란스러워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나 자신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지,
    이야기인즉 -- "생식 기능이없어 성생활을 할 수가 없고 평생 목발을 의지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무의식속에 하루 하루가 지나고 나는 왜 여기에 이런 몰골을 하고 누워있어야 하는가??
    인간의 삶이 무엇이며 삶의 인생은 무엇인가 단순한 생각으로 머리는 꽉 차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멀어지는데
    양팔에 꽃혀 있는 투명호수 줄로 맑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가슴에 꽃혀 있는 두 개의 투명 호수 줄에는 선홍색 액체가 흘러 들어가고
    침대 아래 늘어져 있는 투명 팩에는 피고름이 고이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 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아우성이다.
    아파도 아픈 척을 안 하는 나를 간호장교는 괜찮으냐고 묻는다.
    대답도 없는 날보고 간호장교는 불편한데 있으면 언제든 애기하라 한다.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날보고 측은한 생각이 드는가보다.
    다른 부상병보다 나를 자주 닦아주고 위로를 많이 해주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살아도 살아있는 몸이 아니고
    육신은 있으나 쓸모없는 육신은 어머니에게 짐이요 한이요 불효자인 것을
    가족에게도 불편한 존재인 것을 나 하나만 전쟁에서 전사 하면은 그만인 것을 ----
    생각은 여기서 멈추고,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새벽 두시에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눈물로서 불효자는 사죄하고
    4개의 바늘을 모두 뽑아버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잠이 든다.
    찰싹 찰싹 뺨을 때리면서 정신 차리라는 군의관에 호통에 눈을 뜨는데
    간호장교가 4시경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와보니 혼수상태라 급히 응급조치 하였다고 한다.
    군의관은 무섭게 호통을 친다.
    살려놓으니깐 제 맘대로 죽으려 하느냐 죽으려면 귀국해서 죽던지 말던지 그때 가서 하란다.
    간호장교는 24시간 정성 드려 보살펴주고
    치료 잘 받고 빨리 귀국하여 부모님 만나라고,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책도 보라고 가져다주고 하지만
    나는 왜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매일같이 떼를 쓰기 시작했다. 빨리 귀국 시켜달라고,
    그 후 필리핀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12월 19일 들것에 실려 귀국하고
    서울 대방동 해군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
    (청룡부대 3대대 대대본부에서)

    6개월간에 병원생활을 끝내고
    1971년 5월 31일 제대를 하면서 병원 문을 나서는데
    앞날이 참담 할뿐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모 선임수병이 갈 때가 없으면 같이 가자고한다.
    선임수병도 고향은 안내려간다고 한다.
    출가한 누님이 방 한 칸을 마련해주어 서울 생활을 하는 선임수병에게 부탁을 하고
    그날부터 같이 동거를 하면서 밤마다 미친 듯이 거리로 술집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아 한 많은 내 청춘이여 삶이여 이렇게 살다가 갈 것인가 ???
    이국땅에 뿌려진 내 피와 살점을 토해낸 육신의 보상으로 받은 돈은
    이렇게 마구 아무런 의미 없이 쓰여 지고 몸은 더욱더 악화 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선임수병은 이래서는 안 된다고 누님과 매형에 의해 끌려가고
    혼자 남은 나는 언제나 변함없이 반겨주는 술집에서 살다시피 하고
    돈은 돈대로 탕진하는데 술집에서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마구 써대는 돈 때문에 잘해준 것인데 그래도 갈대가 없다.
    목발을 짚고서는 고향으로는 도저히 갈수가 없었다.
    용기가 없는 것이다.
    선임수병이 찾아와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나는 이대로는 안 내려간다고 그날 둘이서 밤새도록 술을 마지막으로 마시고,
    두발로 고향에 가리라 택시를 타고 서울근교 수락산으로 가서 계곡에 목발을 던져 버리고
    그 뜨겁던 여름에 기어서 산에 오른다.
    가끔씩 지나는 등산객들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는 정도 올라오니 내려가는 것이 걱정이 앞서고
    연로하신 어머니가 기다리시고 계시니 ...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것보다 어렵다 .
    기어서 내려 올수가 없으니 앉아서 미끄럼 타듯이 내려와야 하니
    얼마 못가 바지 엉덩이가 헤지고 꼴이 말이 아니다.
    어는 등산객이 다친 줄 알고 부축을 하게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정중하게 거절하니
    소나무 가지를 구해주면서 깔고 천천히 조심하면서 내려가라고 한다.
    그렇게 두발걷기의 훈련은 시작되고
    3개월쯤 지나고 나는 두발로 100 여미터를 걷게 되었다.
    그런던 어느날 우연히 몇 개월 동안 나를 찾아다니던 형님과 마주치는데
    누구라 먼저라 할 것 없이 청량리역 광장에서 서로 부등켜 안고
    소리 내어 펑펑 우니 구경꾼이 모여든다
    -- 집에 가자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 너 혼자서 얼마나 힘이 들었느냐 그리고 걸을 수는 있는 거야 몸이 왜 이리되었느냐?? - 묻는다.
    그때 몸무게가 48키로 많이 말라있었고 몸과 마음도 괴롭고 힘이 들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다.
    아무것도 모르시는 어머니는 이제 제대하고 오는 줄로 아시면서
    몸이 왜 이리 안 좋으냐고 다리는 왜 절룩거리고 어떻게 되었냐고 하신다.
    다리는 조금 다친건데 조금지나면 괜찮아 질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라고 안심 시켜드리고
    2년여 동안 시골집 생활이 시작되고 매일 같이 들과 강가를 거닐고
    뒷동산에 오르면서 다리는 몰라보게 많이 좋아지고
    1973년 9월 삼성계열 신세계백화점에 취업하게 되면서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휴일이면 전국에 있는 산을 찾아서 등산을 하고 지금도 산을 오르고 있다.



    (베리아 10중대시절 - 작전을 마치고 돌아와 찍은 사진)

    대방동 해군병원에서 담당군의관하고 같이 제대할 때 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백방으로 치료를 하게 되는데 육체적인 성 관계가 될 수가 없다고 판단을 내리고
    또 한 번 좌절을 하게 되면서
    -- 목발은 짚고 다닐 수는 있어도 - 돌아올 수 없는 내 청춘은 어쩌란 말인가???
    투병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월남에서 귀국한 바로 아래 기수인 후배가
    남겨져있던 앨범과 일기장을 가지고 왔다 .
    그것이 유일한 나의 유품인데 일기장은 한 많은 전세방을 전전하다보니 없어지고
    의미 없는 세상살이를 살다보니 어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어 졌다.
    후배의 그날 상황을 하는 말이 베트콩들의 확인 사살직전에 도착하여보니
    무어라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비규환이었다고 한다.
    나를 보니 온몸이 피투성이고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배에서는 창자가 쏟아지고 양 대퇴부와 하복부가 나가고
    사타구니에는 새알 같은 알맹이가 하나가 빠져나와있어서 밀어 넣었다고 한다.
    세월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無)
    그후 피가 거꾸로 토하는 한 많은 세상살이는 무참히도 나를 자학하면서
    나는 방황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 !!!!!
    어떤 결심을 한 것일까 ~ ???????
    2008년 2월 28일.
    나는 인천공항에서 내젊은 청춘을 송두리째 앗아간
    그곳 베리아 반도를 찾아 가기위해 탑승한다.

2009-01-17
0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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