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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단편소설
애린  2009-04-02 22:51:35, 조회 : 2,254, 추천 : 395



있지만…없었던 그 사람 / 정 석 홍
"아빠는 참 좋은 사람이었단다.”

짱의 엄마, 레 티 황옌은 한국인 남편의 사진을 볼 때마다 딸, 짱에게 주문 외우듯이 늘 해 온 말이다. 그러면 짱은 책상 위에 놓여있는 사진틀 속의 아빠 얼굴을 보면서 이렇게 묻곤 했다.

“그런데 아빠는 엄마를 왜 찾아오지 않은 거야! 아빠 딸 짱이 보고 싶지도 않아?”
짱 아빠의 사진은 엄마의 외로움과 짱의 그리움을 외면한 채 빛바래가고 있었다.

“황옌, 전쟁이 끝나면 당신을 꼭 찾아올 거야.”

짱의 아빠는 엄마에게 이렇게 몇 마디 말을 던지고 홀홀히 떠났지만 종내 허언이 되고 말았다. 짱이 아빠와 작별한 것은 엄마 뱃속에서였다. 남베트남 공산화가 짱의 아빠를 돌아오지 않은 다리의 저 편에 묶어놓은 것이다.

‘라이따이한’ 짱에게 베트남 전쟁은 눈물의 씨앗이었다.

베트남이 통일되자 공산정권은 주민들에게 투망을 던져 남베트남 정부 밑에서 부자로 살았다는, 관리나 군인 그 가족이었다는, 사이공 정부에 협조했다는, 미군에 협조했다는 등등의 이유로 잔디밭에서 잡초를 뽑아내듯 이른바 반혁명분자들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베트콩이 벌인 축제의 상床에는 예외 없이 반혁명분자들의 붉은 피가 뿌려졌다. 공산혁명 후 인민들의 추방은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쓰레기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짱의 모녀가 버려진 곳은 메콩 강의 델타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미토(My Tho)시에서 버스로 두 시간 이상 정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지주들로부터 몰수된 과수농장이었다.

통일 전에 베트콩이 장악하다시피 한 지역이라 거의 주민들도 베트콩 가족들이 아니면 공산당에 협조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농장 운영권은 이미 이들이 쥐고 있었으며 도시에서 추방돼 온 사람들은 신종 농노農奴나 다름없었다.

짱 가족이 미토의 벽촌으로 추방된 이유는 짱의 엄마가 적국인 한국 남자와 동거했고, 아기까지 출산한 매춘부였을 뿐 아니라 외국인이 출입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경리를 보면서 미군의 첩자 노릇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죄목의 고깔을 쓰고 레 티 황옌은 겨우 여섯 달이 된 짱을 등에 업고 시골 국영농장으로 강제이주 당해야만 했다.

짱에게 라이따이한은 주홍글씨였고, 이방인으로 취급해도 좋다는 표지였다. 라이따이한이란 중국 사람들의 욕인 ‘왕빠단’이나 우리말에 ‘애비 없는 후레자식’과 다를 바 없는 막된 욕이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짱을 벌레 보듯 했고, 항상 왕따 시켰다.

짱은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동네에서 놀다 오는 경우에 웃고 들어오는 날이 별로 없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짱을 부둥켜안고 같이 우는 날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끊임없이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려 애쓴 엄마 덕분에 짱은 점차 의연하고 강하게 자랐다. 철이 든 짱은 학교에서는 항상 모범생이었고, 모든 활동에서도 아주 열성적이었다.

짱이 그처럼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박해를 받고 살지라도 자식에게는 불운한 운명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사리물고 살아온 엄마의 비장한 각오 때문이었다.

짱은 생활이 고통스럽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꼭 아빠를 찾아 이 설움을 풀고 말거야’하고 다짐했다.

어느덧, 중국에서 불기 시작한 개혁‧개방의 바람이 베트남에도 불어오기 시작했다. 공산화되면 베트남 인민들도 지상낙원을 이루고 살 것이라는 공산당의 영절스러운 말이 슬쩍 꼬리를 감추고, 그렇게 증오하던 자본주의의 씨앗이 개혁‧개방이라는 모토 아래 싹 트기 시작한 것이다.

베트남 정부가 1986년 12월 ‘도이모이’라는 개혁‧개방정책을 표방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적대감도 서서히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개방 바람을 타고 한국인들이 베트남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자 짱의 엄마는 한국인 남편이 혹시 찾아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으며 한편 라이따이한들도 마치 자기들에게 기회가 온 것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짱의 가슴에서도 아빠 나라에 대한 나쁜 감정이 점차 삭으러들고 그 자리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한 켜 두 켜 싸이기 시작했다.

아빠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실 날 같은 희망은 나팔꽃이 새끼줄을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짱의 온몸을 휘감았다. 짱의 엄마는 돋보기를 걸치고 신문에 나온 사람 찾는 광고를 열심히 뒤져보았다. 돋보기 위로 이마의 주름살과 함께 자글거리는 엄마의 마음을 본 짱의 마음은 아팠다.

국교가 수립되고 양국관계가 호전되자 임금이 싸고 공장을 짓기 쉬운 베트남에 한국 기업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짱의 기대는 풍선처럼 더 한층 부풀었고, 수천 명이나 되는 라이따이한들의 희망도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부풀어갔다.

“너는 언제고 너의 아빠를 찾게 될 거야. 네 아빠는 결코 너를 버릴 사람이 아니니까…….”

가즈런히 선 야자수 나무 밑 은빛 모래사장에 수영복을 입은 엄마와 짙은 선글라스를 낀 아빠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사진은, 짱 모녀의 그늘진 오늘을 상상할 수도 없던 꿈 많은 시절의 모습이었다.

짱의 눈에, 파란 하늘 아래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은 엄마의 행복 가득한 미래 바로 그것이었다. 짱의 엄마는 아빠가 사람됨이 거쿨질 뿐 아니라 허우대도 헌걸찬 그런 사람으로 엄마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고, 아빠가 결코 엄마와 짱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한-베트남 간에 국교가 열리고 관광객이 줄을 잇고 들어왔지만 오히려 아버지 나라에 대한 라이따이한들의 기대는 서서히 바람 빠져가는 풍선이 되고 말았다. 짱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전쟁터에 버려진 하나의 쓰레기 파편破片일 뿐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짱은 아빠에 대한 기대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새 미움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개방 이후도 라이따이한에 대해 한국정부는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아이들의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들의 가슴만 더 쓰리게 했다.

“황옌, 짱을 시집보내야지! 안 그래.”
어느새 혼기에 이른 처녀티가 완연한 짱을 볼 때마다 호치민에 사는 짱의 이모는 수선을 떨었다.

“어디 좋은 혼처라도 있어? 언니.”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요즈음 한국 총각들이 베트남 처녀들을 많이 찾고 있다는 구나.”

“한국, 한국 사람은 안 돼요. 신의가 없어요! 내 꼴을 보세요!”
짱 엄마는 언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퉁명스러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하긴 너에게는 한국 사람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 없지. 그러나 다 그렇다고 할 순 없지 않아. 잘 생각해 봐. 짱을 언제까지 끼고 살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우리 짱은 가난하게 살더라도 베트남 총각한테 시집보낼래요.”

“그런 생각도 이해할만 해. 하지만 짱은 한국인의 피를 받고 태어났으니 아버지의 나라에서 살 권리도 있단다. 짱도 아버지를 찾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 왔지 않니. 안 그래?”

이모는 짱의 엄마를 설득시키려고 애를 썼다. 이모가 보기에 짱은 야무지고 얼굴도 고와서 한국에 시집을 가더라도 잘 살 것 같았다. 결국 이모의 설득으로 짱은 한국 총각과 맞선을 보게 되었다.

그 청년은 고귀남이라는 충청남도 서산 청리포에서 사는 서른다섯의 어업후계자였다. 그다지 큰 키는 아니었지만 떡 벌어진 어깨는 속이 넓고 뜬뜬히 보였다. 어쩌면 그 때 짱의 아빠와 같은 충청도 사람이라는 것이 무의식중에 짱 엄마의 마음을 잡아끌었는지도 모른다.

귀남은 처음부터 30여 명의 처녀들 가운데서 짱을 점찍었다. 짱하고 무려 열 살 차이가 났지만 베트남에 찾아온 총각들 중에서는 오히려 젊은 층에 속했다. 짱의 엄마와 이모의 눈에 귀남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베트남 처녀와 한국 총각간의 선은 속전속결이다.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없다. 그저 미리 돌린 프로필과 보는 사람의 순간적 육감에 의해 결정된다. 말도 못하고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마주 앉아서 그 사람의 속내까지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생의 장래를 걸고 한판 윷놀이 하는 식이다. ‘모’, ‘도’를 따질 일이 못된다. 모로 출발하더라도 도에게 잡힐 수가 있고, ‘걸’이 앞질러 갈 수 도 있는 것이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결혼식이라고 해야 짱이 한국으로 가기 위한 요식행위일 뿐이라, 베트남 식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예식을 올릴 필요는 없다. 그저 사진관에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증거가 되는 사진만 찍으면 된다. 그러나 이모는 조촐하지만 가까운 친척과 짱의 친구들을 불러 간단한 피로연을 마련했다.

귀남은 결혼식에 대비하여 커플 금반지를 준비해 갔다. 막연히 준비한 예물이었지만 둘의 천생연분이라도 이야기 하듯 반지는 짱의 손가락에 딱 맞았다. 귀남은 짱이 한국에 올 때 옷이라도 맞추어 입으라고 얼마간의 혼수비용도 건넸다. 비록 약식 결혼이었지만 짱의 엄마는 베트남 관습에 따라 첫날밤을 지낼 신방까지 차려 주었다.

3개월 후 짱은 한국 행 수속이 모두 끝나자 엄마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시집가는 딸보다 엄마가 더 들뜬 기분이었다. 짱의 엄마는 비록 결혼도 치르지 못한 채 딸을 낳았지만 남편의 나라이자, 딸이 평생을 살아갈 한국 땅을 처음 밟게 된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해졌다.

비행기가 호치민 공항을 이륙하자 사이공 강이 한 눈에 들어왔다. 멀리 메콩 강이 검은 정글 속을 실뱀처럼 기어가고 있었다. 거기 어딘가에 미토가 있고, 더 깊숙한 정글 속에 짱이 살았던 마을이 숨어 있을 것이다. 꿈을 잃고 살았던 25년의 세월, 이제 짱의 가슴에는 신천지를 찾아 정든 고향을 등진 사람처럼 넘치는 희망과 두려움이 함께 들끓었다. 베트남에서 펼치지 못한 나래를 활짝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이 짱의 온몸에 열꽃을 피워 났다. 그와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서는 착잡한 생각이 영 떠날질 않았다.

이젠 고국 베트남을 떠나 한국 땅에 묻힐 때까지 한국인으로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베트남을 떠나려니 비록 길지는 않지만 그간 살아온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휘감고 지나갔다. 나라 안에서도 딸을 시집보낼 때면 친정 부모들이 몹시 슬퍼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짱은 옆에 앉아있는 엄마의 마음을 읽으려니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엄마처럼 불행하게 버려진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의 정식 아내로 잘 살아서 엄마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마가 더 없이 가여워보였다.

비행기는 베트남 땅을 뒤로하고 남지나해의 푸른 물위로 떠 날아갔다. 짱은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너버린 것이다.

"엄마, 여자들은 남편하고 얼마를 살아야 애기를 갖게 돼?”
이미 혼례까지 치른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에는 너무나 순진무구한 물음이었다.

“그거야 일 년도 살아야 될 수도 있고, 한 달 만에도 애기가 생길 수 있지. 그뿐만 아니지 단 하루 만에, 아니지 단 한 밤만 자고 나도 애기는 생길 수 있고… 그런데 왜?”

“아니,…….”
“애는 뭘 그런 것을 다 물어. 남녀가 결혼하면 당연히 애기가 생기는 거지!”

짱은 말없이 다시 기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코발트 빛 바다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올 생각을 말라는 것인지 건너 뛸 섬 하나 보이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인도지나해, ‘나는 죽어도 한국 땅에서 죽어야 하고 귀신이 된다 해도 한국 귀신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짱은 하고 또 했다. 기내 스크린에 비친 네비게이션이 한반도 상공에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있었다.

엄마는 계속 기창 밖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것은 남편의 나라, 그리고 딸이 시집살이 할 한국 땅이었다. 여전히 망망대해가 계속될 뿐, 한반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나 흘렀을까, 엄마의 탄성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짱, 저기 한국이……!”

엄마의 목소리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작은 소리였지만 그 감정은 너무나 벅차고 감격적이었다. 짱은 엄마의 손짓을 따라 눈을 돌렸다. 한국의 산야를 보는 순간 짱 역시 엄마 못지않게 감개무량해졌다.

엄마는 결혼식을 보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짱은 한국에서 뿌리를 내려 자식이란 씨를 뿌리고 머리가 파뿌리처럼 희어지도록 살아야 할 곳이다. 그리고 뼈를 묻어야 할 한국 땅이 아닌가? 짱은 들뜨기보다 미래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짱은 마치 지구의 땅 끝으로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땅 끝의 낭떠러지에서 밀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하고 생각하니 결혼에 대한 불안감은 머리를 더욱 무겁게 눌렀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죽을힘을 다해 버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짱과 엄마는 한국 땅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그리던 한국 땅을 밟으면서도 왠지 겁이 난 것은 짱이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짱의 결혼이 아니었더라면 라이따이한을 낳은 어미로써 평생 남편의 고향을 보지도 못하고 눈 감았을지 모를 일이다.

늦은 봄 날씨라 해도 짱 모녀에게는 쌀쌀한 맛이 들었다. 막상 호화롭기 그지없는 인천공항에 내리고 보니 공연한 걱정이 또 밀려왔다. 이렇게 좋은 나라에 사는 귀남 씨가 왜 베트남까지 와서 나와 결혼했을까? 그가 비록 총각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고향에는 줄줄이 아들, 딸이 있고, 나는 혹시 도망친 마느라 자리를 메우는 꿩 대신 닭이 된 것은 아닐까? 정말 귀남 씨 부인이 도망친 거라면, 귀남과 시어머니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싫은 망상들이 머리를 빙빙 돌면서 뾰쪽한 송곳이 사정없이 찔러대고 있는 것 같았다.

각자 시끄러운 속을 달래며 짱 모녀가 사방으로 둘레둘레 눈을 돌리고 있는데 멀리서 귀남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잽싸게 달려와 짱을 덥석 안았다.

짱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석 달 전 약식이지만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첫날밤을 보냈던 귀남의 체취가 얼마나 그리웠던가. 짱은 솔직히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이렇게 귀남과 감격스러운 포옹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두 사람의 포옹은 첫날밤 감회보다 더했다. 짱은 그제야 귀남이 평생을 두고 섬겨야할 낭군이라는 확신이 섰다.

일행은 공항을 빠져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는 귀남이 친구가 몰고 온 승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짱과 엄마는 귀남이 마중을 받고서 이제 정말 한국에 왔다는 실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동안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감았던 잡념들도 한꺼번에 날아갔다.

공항을 빠져 나온 차는 시원하게 쭉 뻗은 하이웨이를 신나게 달렸다. 양쪽으로 즐비한 고층 빌딩들, 세련되게 채색된 건물들, 푸른 산하는 마치 사람들을 보라는 듯이 도열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귀남이 이렇게 부자나라에서 어떻게 장가를 못 들고 베트남까지 와서 신부를 구했을까? 풀길 없는 궁금증이 또다시 짱의 가슴을 밀고 올라왔다.

아빠는 전쟁 통에 베트남에 주재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엄마를 좋아한 것뿐이고, 그러다가 실수로 어쩌다가 내가 태어난 것이다. 부자 나라의 아빠는 외로운 이국생활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엄마를 한때나마 성적 노리개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본국으로 돌아가 본처를 만나 다시 예전의 생활이 이어지자 엄마에 대한 생각은 마치 씹던 껌을 뱉어버린 것처럼 미련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애써 아름답게 간직하려 했던 아빠의 초상이 어느새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가 갈가리 찢겨진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쁜 날에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 같은 것이 머리를 빙빙 싸고 돌 때마다 짱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하고 속으로 외쳤다.

차는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귀남과 짱이 손을 꼭 잡고 있는 것을 보니 짱의 엄마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사랑은 몸으로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믿었다. 짱의 엄마는 두 사람을 보고 마음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어도 두 사람은 그 어떤 말보다 진하고 정감이 넘친 교감을 나누는 듯 했다.

다행이, 짱은 3개월 동안 호치민에 있는 이모 집에 머물면서 한국어 학원을 다녔기 때문에 벙어리는 면할 수 있었다. 메콩 강을 늘 바라보고 살던 짱이었지만 확실히 한강은 넓고 큰 강이었다. 메콩 강 연안은 더북더북 우쭐대고 있는 숲이 음산한데 비해 한강 연안은 공원으로 잘 정리되었고, 쭉 뻗은 고속화도로를 싱싱 달리는 차들은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병풍처럼 늘어선 아파트들은 너무나 압도적이었고 참 부자 나라다운 모습이었다. 그럴수록 짱의 가슴은 더 오므라들고 있었다. 차는 얼마쯤 한강을 따라가다가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짱과 귀남은 대부분 서로가 잘 알아듣지 못할 다른 나랏말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 웃는 모습이 여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달리다가 차는 멋진 휴게소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리자 짱 두 모녀는 가슴을 크게 펴고 처음으로 한국의 공기를 흠뻑 들이켰다. 두 사람은 기내식으로 점심을 먹긴 했으나 출출한 생각이 든 참이었다. 짱 모녀가 가늠하기에 학교 운동장보다도 큰 주차장에 차가 빼곡하게 들어 서 있는 모습은 입이 떡 벌어질만한 풍경이었다.

귀남은 모녀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식당은 짱 모녀에게는 낯설기만 한 음식을 들면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로 왁자지껄 했다. 그 모습은 베트남에서 보지 못한 생기가 넘치고 있었다. 귀남은 두 사람을 식당 벽에 걸려있는 사진 메뉴판 앞으로 데리고 갔다. 짱 모녀의 눈길은 역시 국수로 갔고 귀남은 무조건 가장 비싼 국수를 골랐다.

짱은 베트남에서 쌀국수를 즐겨먹었기 때문에 한국 국수에 대해 친근감이 갔다. 짱은 국수 그릇을 받고나서 좀 실망했다. 한국의 국수는 고명 같은 것이 별로 없는데다 어묵 튀긴 것이 한 두어 점 들어있었고, 물에 퉁퉁 분 굵은 밀가루 면은 베트남 식 ‘포’도 아니고 중국 식 ‘면’도 아닌데다가 감칠맛도 없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한국에서 처음 맛보는 음식인데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그러나 귀남과 친구는 국물까지 훌훌 마시며 아주 맛있다는 표정까지 놓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는 국수를 ‘포’(Pho)라 하고 면을 ‘미’(Mi)라고 한다. 그리고 소고기가 들어간 국수 ‘포 보’(Pho Bo)나 닭고기를 넣은 ‘포 가’(Pho Ga), 그리고 해물이 들어간 ‘포 하이싼’(Pho Hai San)이라는 것이 있는데 짱은 육류가 들어간 국수보다 해산물이 들어간 포 하이싼을 좋아했다.

짱은 귀남이 바닷가에 살고 어업에 종사한다니 한국에서도 좋아하는 포 하이싼을 만들어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귀남의 집에 도착하니 일가친척들이 다 모여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짱은 준비된 한복으로 갈아입고 상견례장인 안방으로 들어가서 홀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베트남의 한국어 학원에서 배운 데로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 허리를 펴고 나서 짱은 시어머니에게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어머니, 저를 며느리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짱의 뜻밖의 일성에 시어머니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입이 벌어졌다. 이방인인 베트남 처녀가 우리말로 또박또박 인사하는 것이 대견스럽지가 않았던 것이다.

“인사말이라도 미리 써서 외운 것 아니것시유.”
“그나저나 우리말로 인사하니 기특하기는 하네.”

다음에는 귀남이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인사를 시켰다. 그 때마다 ‘이모님’, ‘고모님’, ‘올케’ 등등 귀남이 지목한 대로 호칭을 대가면서 “… 잘 봐주세요.”하는 모습도 곱살스러웠다. 시어머니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귀남은 그런 짱이 참으로 대견스럽게 보였다.

마침내, 귀남과 짱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이 밝았다. 짱은 귀남의 양해를 받아 아오자이를 입었다. 그래도 베트남 사람임을 여러 사람 앞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짱이 움직일 때마다 팔랑이는 아오자이 사이로 속살이 들어나, 가냘픈 베트남 여성의 고혹적인 자태에 눈이 쏠렸다.

짱 엄마의 얼굴에는 연방 미소가 떠나지가 않았다. 한적한 바닷가 포구의 결혼식은 모처럼 신나는 한 마당 큰 잔치였다.

결혼식은 정년퇴직한 교장선생의 주례로 마을 회관 마당에서 진행되었다. 문화원 주선으로 베트남 출신 아주머니들까지 10여명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짱은 외롭지 않았다. 베트남 아주머니들이 있으니 이들과 때때로 어울린다면 외로움을 나눌 수 있고, 향수 같은 것도 쉽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시골에서 시집, 장가들고 아이가 태어나는 것보다 더 경사가 없다. ‘귀남이가 큰 복을 받았다’는 동네 사람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귀남이 어머니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눈물을 찍어냈다. 피로연은 마을회관에서 열렸다. 피로연에서 신랑과 신부는 전통 혼례복장을 입었다. 귀남은 늙다리 신랑처럼 보였지만 짱은 영락없이 곱디고운 신부였다. 맨 앞자리에 신랑 신부와 양가 대표가 자리를 하고 앞으로 하객들이 길게 상을 받았다.

그 때 갑자기 ‘욱’하고 짱이 목까지 치미는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입을 막으며 고개를 숙였다. 옆에 앉은 짱의 엄마가 어깨로 감쌌다. 그래도 다시 ‘욱’하고 괴로운 모습을 하자 들러리를 보고 있던 귀남의 여동생인 시누이가 얼른 짱에게 다가왔다.

“언니, 괜찮아요?”
“야, 체한 것 아녀?”

“어머니 아닐 거예요. 한국음식 냄새가 낯설어서 비위를 건드렸나 봐요.”
귀남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계속 짱이 괴로워하자 귀남의 동생이 부축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잔치 상에 앉은 손님들을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렇게 한국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야 어떻게 부엌일이나 할꺼나?”
“몸이 너무 허한 것 같은디……?”
“혼인식 날 입덧부터 할 리는 없고…….”

모두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며느리가 그 먼 데서 비행기 타고 온 게 바로 어제 유. 비행기 멀미도 가실 새가 없을 거구만유. 새 색시가 좀 정신이 없겠시유. 걱정들 말고 음식이나 마음껏 드셔유.” 귀남 어머니가 능갈맞게 수습하고 나섰다.

오랜만의 잔치에 마을은 한껏 흥을 돋우었고, 짱의 엄마는 사돈의 후한 대접이 미더워 그저 고맙다는 생각만 들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 신랑 하나 만을 믿고 홀몸으로 타역에서 온 불쌍한 신부를 온 시집 식구가 구박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딸과는 정말 무관해 보였다.

시집의 배려로 짱과 마지막 밤을 함께 누어 보낸 짱의 엄마는 오래도록 짱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엄마 걱정은 말고 편안이 잘 지내라는 당부를 하며 밤새 딸을 다독였다. 그러나 어쩐지 모녀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기 바빴다. 며칠 있다가 짱의 엄마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베트남 비행기에 올랐다.

결혼식을 마치고 유심히 보니 짱은 시어머니의 눈에도 입덧이 확실해 보였다. 짱이 임신했다는 확신이 들자 시어머니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동네 여자들의 입방아는 짱이 곧 베트남 애기를 낳게 될 것이라는 데까지 비약할 것이 뻔했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려면 그저 서류를 꾸미기 위해 사진관에서 결혼사진 만 찍고 돌아오는 걸로 아는 것이 동네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상상이었다. 이제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짱이 입덧이 입방아를 찌어댈 더 없이 좋은 빌미가 될 터였다.

“형님,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아유.”
마실 나온 옆집 광희 엄마가 슬쩍 운을 떼었다.

“소문은 무순 소문? 여편네들이 뭐라고 떠든디여?”
“아니 글쎄, 베트남에 가서 색시 데려오기 위해 사진만 찍었을 텐디…… 그럼 누구 애기냐구…….”

“여편네들 할 일도 없는가비여. 며느리가 애기를 낳아보면 알 것 아니어!”
호기롭게 대꾸한 귀남의 어머니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귀남을 불러다가 조용히 물었다.

“귀남아, 월남에 갔을 때 별 일 없었지야?”
“별일은 무순 별 일……?”
“동네에서 하도 말이 많다기에 한 말이다.”
“무슨 말인데유?”
“며느리가 베트남 새끼를 뱃속에 담고 왔다고들 수군대서 하는 말이다.”
“그래유?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하시남유?” 귀남은 껄껄 웃어댔다.

“이 놈아 웃기는……. 글쎄 새 아기를 믿지만 갓 시집 온 색시가 입덧을 하니까 어떻게 생각헐지 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머니도 참, 입덧이라면 어머니 손주겠지유.”
“뭐라고?”
“내 애기 말이여? 사실은 베트남에 가서 혼인식을 올리고 나서 첫날밤을 치뤘시유.”

“그려? 이 망할 놈아, 진작 이 엄니한테는 말을 했어야지.”

짱은 한국 음식에 대한 상식이 없어 늘 시어머니 눈치만 볼 뿐이었다. 그 때마다 시어머니는 ‘저 멍청한 것, 제 남편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하고 속으로 타박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귀남이 어머니의 눈에는 며느리가 하는 짓은 다 예뻐 보였다. 시어머니의 자상한 마음 씀씀이와 온유한 태도는 짱을 편하게 했다.

짱이 웃음이 많아진 건 결혼 초기 시어머니와 시집 식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웃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기도 하다. 시어머니가 언짢아하든, 칭찬하든 짱은 그 뜻을 잘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마냥 웃어 넘겼다.

한국에서는 고부관계가 좋기 어렵다 들었지만 시어머니는 짱을 가르쳐 주려고 애썼다. 한국 사람의 투박스런 표정이나 말투에 겁을 먹기 보다는 그것이 한국적인 특징이라는 것도 차츰 알고 익숙해졌다.

시어머니는 짱에게 한국말도 차근하게 가르쳐주었다. 시어머니는 초등학교만 나온 시골 아낙네이지만 신문을 빼놓지 않고 볼 정도로 아주 영특한 사람이었다. 밥을 하고 국을 끓여도 어머니가 손수 만들면서 짱을 옆에 끼고 실습시켰다. 김치를 담아도 짱이 매워할까봐 고춧가루를 덜 넣었다.

그리고 짱이 입맛을 느끼기 시작하자 점점 매운 강도를 높였다. 특히 서해안 사람들은 젓갈을 좋아한다. 베트남에서도 젓갈을 쓰기 때문에 젓갈 맛에 익숙한 짱에게는 다행이었다. 시어머니의 이러한 배려로 짱은 시집살이 몇 달 만에 웬만한 음식은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손수 상을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시집살이가 어느 정도 몸에 익고 고부간에 살가운 정이 싸이기 시작하자 시어머니는 시내에 나갈 일이 있으면 짱을 동반했다.

사람들은 배가 봉긋하게 부른 짱을 흘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뽐냈다. 시어머니는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묻지 안하도 먼저 며느리를 소개하고 자랑했다.

귀남이 베트남에 가서 식을 올린 지 꼭 열 달하고 닷새가 지나서 떡두꺼비와 같은 아들이 나왔다. 짱의 아들, 고장수의 백일에 마을 사람들을 불러 큰 잔치를 벌였다.

“꼭 지 애비 닮았시유.”
“붕어빵이구먼유.”
“고 씨 집안에 장군 하나 났어유.”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들려 올 때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귀남의 어머니였다. 귀남이 어머니는 ‘봐라, 이것들아! 너희들이 뭣이 어쩌고 시부렁댔지만 내 며느리는 분명히 내 손주를 난 거여‘ 하면서 속으로 큰소리쳤다.

짱은 아들 장수가 어느 정도 자라자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귀남의 어로작업을 돕고 나섰다. 봄, 여름이면 그물을 같이 걷어 올리고 가을과 겨울에는 김발을 놓고 김 걷기에 손등이 다 틀 정도였다. 암팡진 짱은 귀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억척같이 따라 나섰다.

파란 물과 시원한 바다를 가르고 질주하는 보트 위에서 맛본 기분이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베트남에서 메콩 강을 눈앞에 두고서도 언제 한번 보트를 타고 치맛자락 휘날리며 멋지게 달려본 적이 있었던가?’ 생각하니 짱은 눈물겹도록 귀남이 좋았다. 사람들은 이런 짱을 ‘또순이’라고 불렀다.

짱은 처음에 혹시 욕이 아닌가 하고 긴장했지만, 부지런하고 악착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란 걸 알고는 기뻐했다.

어느새 동네에서는 짱을 효부라고 칭찬까지 더해 주었다. 짱은 친정 엄마가 한국인과 결혼할 수 없었던 나쁜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한국말 실력도 날이 다르게 늘었다.

베트남에서 가톨릭 신자였던 짱은 곧바로 성당에 교적을 두었다. 그리고 짱은 미신을 믿고 푸닥거리에 의존하던 시어머니를 천주교 신자로 만들었다. 바쁘고 귀찮다 하는 남편은 괜히 말다툼이 될까 싶어 강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귀남은 짱과 어머니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추듯 성당에 따라가는 아들 장수를 볼 때마다 흐뭇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둘째 아이를 갖게 되자 짱은 바다에 나가는 일을 그만두고 교회일과 문화원 행사에 부지런히 참여하여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 한국문화에 순조롭게 적응한데다가 한국어 실력이 늘어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아마 절반은 한국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짱은 시간 나는 데로 기도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은혜로 이제 제가 진짜 한국인이 되어 갑니다. 시어머니도 하느님을 공경하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아이들 아빠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짱의 아이들은 어느 한국의 아이들처럼 잘 자라주었다. 베트남에서 자기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라이따이한이라 해서 눈총 받고 사는 것을 수 없이 보고 살아온 짱은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았다. 간혹 아이들이 울고 들어올 때 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동네 아이들이 ‘너의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야’하고 놀린다고 할 때면 베트남에서의 악몽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그런 일도 얼마 가진 않았다. 할머니가 나서서 그런 아이들을 따끔하게 혼내주곤 했으며 때로는 과자를 사주며 손자들과 잘 지내라고 환심을 사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정성스레 끼고 살아선지 한국말을 정상적으로 배우고 정서도 맑았다.

그렇게 식구대로 떳떳하게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외모가 조금 다른 것이 흠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개성이 있게 예쁘다고 부러워할 지경이었다. 모두가 시어머니의 튼튼한 울타리 덕분이었다.

짱은 이주여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일들이 남 이야기만 같았다. 그래서 짱은 항상 당당하고 용기를 잃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베트남의 친정 엄마가 그렇게 가르친 덕분이기도 했다.

짱은 아이들이 크면서 시어머니가 전적으로 돌봐주자 시간이 날 때마다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시어머니나 신랑도 아주 좋아했다. 베트남 이주여성 모임의 총무직도 맡아 그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농한기에다 어한기에 접어든 초겨울 어느 날 성당의 수녀님이 짱을 찾았다.

“마리아 자매님, 서산성모병원에서 간병인으로 봉사해줄 자매를 구하는데 봉사활동 한번 안 해보실래요?”

그렇지 않아도 한국 사회에 뭔가 기여하고 싶어 안달인 짱에게는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어릴 적 간직했던 간호사의 꿈에도 다가가는 것 같아 설레기도하였다. 짱은 시어머니와 신랑도 찬성할 것이라고 믿고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다음날, 짱은 수녀님 부탁대로 시내에 있는 성모병원으로 갔다. 짱이 돌볼 환자는 이 지방의 모 건설회사 사장으로 한 달 전에 건설현장을 둘러보다가 미끄러져 허리를 다쳐 혼자서는 운신을 제대로 못하는 천주교 신자인 오기환 사장이었다.

“이렇게 도와준다니 참 고맙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돼지요?”
침대에 들어 누운 체 눈을 반쯤 뜬 오기환이 물었다.

“마리아라고 합니다.”
“세례명 말고 집에서 부르고 있는 이름은?”무엇이 궁금한지 오기환은 계속 물어왔다.

"돈 후엔 짱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혹시 베트남 색시?”
오기환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을 크게 뜨고 짱의 얼굴을 뚫어져라하고 쳐다보았다.

“예, 저는 베트남에서 시집 왔어요.”
오기환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상념에 빠져들었다. 한참 있다가 다시 눈을 뜬 오기환은 짱의 얼굴에 깊은 시선을 주었다.

“한국에서 결혼 생활은 행복해요?”
“네. 아주 행복합니다.”

“나도 전쟁 중에 베트남에 잠깐 있었지…….”
“그러세요? 베트남 전쟁에라도 참전하셨던가요?”
“군인이 아니라 회사일로 잠깐 머물렀어요.”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성심껏 간병해드릴게요. 사모님은요?”
“그 사람 작년에 갔지. 암으로…….”

짱은 오기환이 베트남과 인연이 있다는 말에 무척 호감이 갔다. 꼭 베트남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리고 부인을 먼저 보냈다는 말을 들으니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환도 어쩐지 짱에게 더 깊은 정감을 느꼈다. 그는 짱을 볼 때마다 베트남에서 살던 때의 아스라한 그 어떤 추억을 떠 올린듯했다.

짱은 남편의 배려로 간간이 베트남에 전화해 안부를 알렸다.

“엄마, 나 잘 있어요. 아이들도 잘 크고요.”
“다행이고 고맙구나. 장수 아빠는?”
“고 서방은 겨울이래도 바다 일로 좀 바빠요. 전 요즘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고요.”

“좋은 일 하는구나. 그래 어떤 사람을 간병하고 있는데?”
“건설회사 사장인데 베트남 전쟁 때 사이공에서 잠깐 근무한 적도 있었데요.”

“건설회사라고? 그래 어떤 분인데?”
“오기환 사장이래요.”
“으음, 아니구나.”
“뭐가, 아니에요?”

짱은 계속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아 정해진 시간 동안 오 사장의 운신을 살펴주고 물리치료실을 오가며 회복을 도왔다. 오 사장은 팔자에도 없는 딸이 생긴 듯 정성을 다해주는 짱이 너무나 고마웠다. 두 사람의 사이가 한층 편해져 오 사장이 말도 놓게 된 어느 날, 병실로 들어서는 짱을 반기며 기다렸다는 듯 오 사장이 말을 꺼냈다.

“간밤에 아주 특별한 꿈을 꿨어.”
“그래요. 어디 한번 얘기해 보세요.”

“그럴까? 아니야 좀 있다가 산책 나가는 시간에 이야기 해줄게. 이야기는 역시 산책이나 길을 걸으면서 해야 기분이 나거든…….”

짱은 언제나처럼 오 사장을 태운 휠체어를 병원 후원의 산책길로 밀고 갔다. 초겨울이었지만 햇살이 따뜻했고, 명지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 사장은 병실의 안락한 침대보다 바람기가 차가워도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정원에 나가면 아직도 국화며 사계화가 양지바른 울밑에서 마지막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사장님, 아까 꺼낸 꿈 이야기 좀 해 보세요!”
“그리고 저러고 후엔 짱은 먼 옛날부터 알고 있던 사람 같으니 이상하단 말이야.”

“그래요. 저도 오 사장님을 뵐 때마다 처음 만난 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꿈 이야기나 좀 해 보세요.”

“아하, 꿈, 꿈 이야기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닌데…….”
“좋은 꿈이면 내가 살게요.”
“어허, 짱도 이제 한국사람 다 됐네. 꿈도 살줄 알고.”
“그래요. 제가 아주 제대로 된 한국 사람이거든요.”
“꿈이 좀 비쌀 텐데?”

오 사장은 대게 뜸을 드리다가 꿈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베트남에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지. 그 애인이 내가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와서 깜짝 놀랐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기도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전쟁 통해 헤어진 애인을 찾아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애인 찾아 3만 리 같은 거…….”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이 내 가짜 이름 석 자와 근무했던 회사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나를 찾겠어?”

“한국 속담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잖아요? 사장님이 그분을 그리워했다면 여자인 그이는 오죽하겠어요?”
“내가 그 사람에게 잘 못한 게 정말 많지만 그 때는 정말 사랑했고, 평생 잊어본 일이 없어…….”

“사장님, 애인은 어디서 살았던 누구예요? 저도 베트남 사람이니 한번 말해 보세요.”
“살기는 사이공에서 살았지…….”
“이름은요?”
“나는 그 사람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도 없어. 결국은 내가 버린 셈이 되었으니까!”

오 사장은 베트남 여인의 이름을 끝내 대지 않았다. 그 때 짱의 핸드폰이 울렸다. 베트남의 엄마한테서 온 전화였다.

“엄마, 어쩐 일이에요?”
“너의 아빠에 대해 퍼뜩 생각이 난 것이 있어 전화했다.”
“그래요?!”
“응, 목이랑 오른쪽 귀 뒤에 큰 점이 하나씩 있었는데 그게 자꾸 생각나는 구나.”

“갑자기 웬……? 엄마가 어떻게 그것을……?”
“애야, 사랑하는 사람의 몸이란 아무리 작은 데라도 정이 가고 문득문득 생각나는 거야!”

짱은 결혼을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보니, 아직도 아빠에 대한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를 버리고 잊었다 해도, 그리움보다 원망이 더 커졌다 해도 마음속에서는 사랑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그런 생각에 이끌려 휠체어를 밀다가 짱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오 사장의 목덜미를 자세히 보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설마 싶은 것이 공연히 겁이 덜컥 났다. ‘정말 이 양반이 내 친 아버지라도 된다면…….’생각하니 묘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설마 ‘이렇게 쉽게 아빠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하고 꿈같은 생각도 들었다. 하기야 30년의 세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짱은 용기를 쥐어짜 휠체어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는 오 사장의 목을 환자복 아래에 묻힌 부분까지 세심히 살펴보았다. 점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니 귀 뒤는 볼 것도 없다. 그러면 그렇지, 짱은 허탈해지면서 공연히 화가 났다.

“사장님, 사장님은 얼굴도 잘 생기셨지만, 뒤에서 봐도 티 하나 없이 깨끗하시네요.”
“짱, 언제 내 몸을 그렇게 잘 훔쳐봤지?”
“…….”
“그래? 현대 의학의 도움을 좀 받았지.”
“네?!”

“목에 큰 점 하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흉점이라고 자꾸 파버리라는 거야. 옛날부터 눈에 띄는 점은 나쁘단 소리를 듣고 그냥 두기도 뭐해서 피부과에서 레이저로 없앴지. 귀 뒤에도 하나 있는데 그건 놔두었어. 이건 또 복점이라데. 이 점이 일생에 소원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나 뭐라나…….”

짱은 너무 놀랐다.
오 사장의 목덜미가 깨끗해서 물어볼 엄두도 안 냈던 바로 그 점이 거기 있었다.

“사장님, 혹시 베트남에 계실 때 그 때도 오기환 씨였나요?”
“갑자기 그건 왜?”
“…….”

짱은 순식간에 그가 아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번개에 맞은 숨을 곳 없이 불시에 몸을 관통하는 확신이었다. 눈물샘이 아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온 것만 같은 진한 농도의 눈물이 짱의 뺨을 타고 흘렀다.

“왜 대답이 없어? 베트남에서 썼던 내 이름을 알고 싶다며?”

짱은 감정이 복받쳐 올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오 사장이 그 순간 자신을 등지고 있다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상한 낌새에 오 사장은 휠체어를 밀고 있는 짱의 얼굴을 돌아다보았다.

“돈 후엔 짱, 무순 일이야? 혹 엄마에게 한국인 애인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래서 나라도 원망하고 싶은 거야!”

“네, 그런지도 몰라요… 충청도가 고향이라는 이수환이란 사람…….”
“뭐? 이수환이라고?”
“네. 맞아요.! 이수환!”

오 사장은 고개를 돌려 짱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짱의 손목을 잡고 휠체어 앞으로 끌었다. 짱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고 나서 짱의 두 손을 잡고 힘껏 끌어안았다.

“그럼 엄마의 이름이 레 티 황옌이고?”

어처구니없는 운명의 마주침에 두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짱은 아빠가 왜 이렇게 멀쩡하게 존재하면서도 그 오랜 시간 동안 엄마와 짱에겐 없는 사람이어야 했는지 묻고 싶을 뿐이었다.

오기환은 오랫동안 가슴 아프게 추억하면서도 어쩌지 못 한 채 살아온 세월에 대해 무순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끝)






메인이미지 : 베트남화가 Dinh Quan
단편소설 : 작가 정석홍
편집인 : 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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