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로 창 너머 목련이 활짝 피었습니다. 마치 여인의 속옷 같은 하얀 속살을 바람에 하늘거리며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머지않은 날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어나겠지요. 그러고 나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테고……
그런데 봄이 왔음에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왜일까요.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여러 해 동
안 연례 행사처럼 해왔던 봄나들이를 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고향의 철마 경로당에 어르신들과 함께 했던 나들이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해 두 해 연륜이 깊어감에 따라 거동이 불편해 더 이상은 무리라는 판단이었습니다.
해서 가슴 한 켠에 머물러 있는 기억이나마 더듬어 볼까 합니다. 어르신들과 봄나들이는 우연찮게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몇 해는 동생이 승합차로 모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동행하지 못한 분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지요. 그래서 희망하는 분들을 모두 모아 24인승 미니버스에 태우고 목포로 향했습니다. 해양박물관을 비롯해 남농기념관, 그리고 강진에 있는 청자도요지를 구경 하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만 돌아 보아도 하루 코스로는 너끈 하리란 짐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쉬엄쉬엄 구경하고 다음코스로 이동하자 해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바퀴 휑하니 돌아 보고는 다시 차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고 하는 수없이 돌아오는 길에 예정에 없던 보성의 녹차 밭에 들러 녹차를 음미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반응이 좋아 고향에 가면 어르신들이 더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했던 기억을 반추하며 고마워 하셨습니다. 때문에 매년 그날이 기다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였습니다. 진해에 들러 벚꽃을 구경하고 거제도로 가 조선소를 구경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창원과 진해 일원이야 익숙한 곳이라 모처럼 엉터리 가이드가 아닌 진짜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찌감치 마산에다 차를 세워놓고 창원대로 입구에서 기다렸지요. 얼마쯤 있으니 35인승 버스가 다다랐습니다. 열띤 호응 속에 이번에는 차도 큰 걸로 준비했습니다. 차에 올라 한 바퀴 돌며 인사를 하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리곤 창원시의 조성 경위와 공단의 발전상 하나하나 설명해 드렸지요. 혹시 벚꽃이 일찍 피었다 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그 해는 꽃샘추위에 본격적인 개화기가 일주일 정도 늦어졌습니다.
때문에 창원대로의 벚꽃은 절정이었고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도 연장해서 개방을 했습니다. 단 차에서 내릴 순 없어 한 바퀴 돌아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 연유로 곳곳에 초병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자 창 밖을 보십시오. 멀리서 어르신들이 오신다고 아이들이 마중 나와 있습니다. 손 한번 흔들어 주시고요.” 어르신들은 다 알고 있으면서 시답잖은 소리에도 껄껄껄 웃으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거제로 가는 길에 예기치 않은 비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아직 점심도 해결하지 못한 터라 마땅한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 난제가 있었습니다. 전날부터 나들이 올 거라 돼지도 잡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장만했는데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비는 내리지 않고 그쳐 포로수용소 입구에 파고라 아래에 돗자리를 구해다 깔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노인들이 투박한 손길로 싼 주먹밥은 김으로 갈무리 해 웬만한 고구마 정도 크기였습니다. 더불어 양푼이를 준비해 봉지에다 싸온 서대회를 넣고 즉석에서 회 무침을 버무렸습니다. 거기에 더해 돼지수육에 막걸리 한잔 곁들이니 그 맛은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나들이조차 이젠 기억 속에서 더듬어야 하니 안타까운 마음만 더합니다. 모름지기 “돕는 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영복님의 그 말씀처럼 어르신들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들이라도 하고픈데…… “어떤 일이든 지나고 나면 그때가 좋았어”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요즘입니다. 언제 다시 그런 날이 올까요?
애린
바로 여행을 떠날 지 모른다며
여행가방속에 철 이른 옷을 잔뜩 담아 오시던 울 엄마...
그랬어요...
울 엄마는 정말 여행을 떠나신 게 맞아요.
동네 어른들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오던 제주도 여행을
몇 달 앞두고
꿈인 듯 너무 먼 길을 떠나시고 말았네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여행 가방을 보면
그렇게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여행의 꿈을 잃지 않던 울 엄마가
저는 생각나요...
산적두목님
여행떠나기에 참 좋은 계절이 찾아왔네요.
그렇게 떠난 수 많은 계절을 두고도
변함 없이 자리해 주신 님의 마음자리가
너무도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살아간다는 게 어려울 수록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귀한 가치를
이제는 느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