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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그렇게 잠들다.
애린  2009-03-12 23:44:09, 조회 : 1,875, 추천 : 363

경상북도 봉화, 첩첩산중 두메산골.
그 오지(奧地) 하늘마을 아래에 30년 지기(知己) 오랜 동무가 살고 있었다.

30년을 하루같이 자연을 벗 삼아 눈을 마주치고 들판을 누비며 행동을 함께 하였으니,
인간 세상에 아무리 깨가 쏟아지고 죽고 못사는 사이라 할지라도 때로 말싸움에, 거센
드잡이( 서로 머리나 멱살을 움켜잡고 싸우는 짓)질로 소, 닭 보듯 하기도 하고 심하면
갈라서기도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데, 이들 사이에는 그 흔한 사연 한번 없었다고 하니
이를 두고 천상천하( 天上天下)의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어찌하랴, 하늘의 이치가 다하면 아무리 재주에 능한 삼천갑자 동방삭
(東方朔 : 중국 전한(前漢)의 문인(?B.C.154~?B.C.92)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을.
이른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동네에 어둠이 깃들기까지 자나 깨나 함께 했던 이들 지기(知己)에게도
'이별'이라는 별리(離別)의 아픔을 나눠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주인인 큰 동무('워낭소리'의 할아버지)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가까이, 본인의 몸
일부분처럼 아끼며 함께 동고동락 해온 동무(또 다른 '워낭소리'의 주역, 소)가 생명력을 다함에
어쩔 수 없이 먼 길을 떠나보내야만 할 순간을 맞게 된 것이다.


이제는 그에게 편안한 쉼터로 갈수 있도록 안식과 자유의 몸으로 놔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동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고 큰 정을 나누어 주었던
큰 동무 지기앞에서 고요히 눈을 감았다.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다. 저비용 독립영화이면서도 '2009년 벽두
영화 팬들의 심금을 울리며 2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려움에 처한 오늘
우리시대와 인정마저 각박하게 메마른 현실에서 인간과 또 다른 동물(소)과의 지고지순한 삶의
동반자상을 코끝을 찡하게 일깨워준 바로 우리들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몇 마디 연속되는 대화도 없다. 출연자는 기껏해야 몸이 성치 않은 시골 영감님과
풀린 눈에 껴 앉은 눈곱, 다리마저 풀린 듯 늙고 힘없어 누구하나 제대로 거들떠보지도 않는 한 마리
노쇠한 소. 거기에 더해 영화라면 대충 그럴듯해 보이는 배우 한명 없다.


마치 6, 70년대 시골마을 같은 풍경에 늙은 소의 엉덩짝에는 덕지덕지 눌러 붙은
마른 쇠똥하며 아궁이 장작불 아래서 지펴 오르는 모락모락 한 연기, 금방이라도 해묵은 풀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 것 같은 쇠죽의 구수한 느낌, 많은 말은 오가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 내리는
것만 같은 지기와의 신작로 가 노변정담(路邊情談).


겉으로 드러나는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아닐지라도 그 안에 스며든
촘촘하면서도 잔잔한 줄거리는 그 때 그 시절을 단박에 떠올리게 하는 가슴 뭉클한 동화 같은
구성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관람했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이야기. 기축년(己丑年)
소띠의 해에 가장 한국적인, 한국인이 만든 한국 영화이면서도 우리말로 자막이 뜨고 화면과
더불어 표준어로 된 해설을 봐야 제대로 의사전달이 되는 우리 이야기, 그게 바로 '워낭소리'다.


7, 80년대 우리네 농촌에서 '소'는 구태여 우골탑(牛骨塔)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가정의 가장 큰 자산이고 보배였다.
우사( 牛舍 :외양간)에 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곳간에 풍요롭게 쟁여 놓은 쌀섬이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차이이기도 했으니, 요즘에 비긴다면 빵빵하게 대박을 터뜨리며 상종가를
때리는 주식 시세에 비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그만큼 시골에서의 소 한 마리는 장정 대여섯 명을 능가하는 일꾼으로서의
역량뿐 아니라 가계 재산목록 1호이기도 했고 든든한 친구이자 버팀목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내 기억 속에 든 한 마리 소와의 개별적 인연은 잘해야 10년 안쪽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수명으로 기껏해야 15년이라는 소의 생명력을 감안한다면 '워낭소리'에
나오는 우리의 주인공(소)의 나이는 그 배가 넘는 30년에 이르고 있다.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더 기이한 인연일수도 있으려니 영화 속 할머니 표현대로 "라디오도 고물, 할아버지도
고물, 소는 고물의 고물" 축에 드는 막장(=끝장)(?)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고삐를 당기며 "워 워", "이랴"를 연발하는 '큰 지기' 할아버지와
그 자신도 노쇠해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힘에 부쳐 더 이상의 일을 하기에는 어려워 보이는
'작은 지기' 이지만 그래도 그들 '30년지기(知己)'끼리 함께만 나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정겨움으로 가득 차오르게 보이곤 했다.


그래서인지 하루 일을 마감하고 지게와 구르마(수레) 가득 땔감을 싣고 터덜 터덜
걸어오는 모습 뒤로 곱게 물든 저녁노을이 빛을 발해 비록 오늘이 힘에 겨운 날이었다 해도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지기에게는 더 이상의 어려움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해 관객들의
눈시울을 후끈하게 만들어 주는 듯 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 하루 일로 입맛이 없어도 정성을
다해주는 동무네 가족을 생각해 넘기지 못할 것 같은 식사(쇠죽)지만 입술이라도 축여 답하려
하지만 세월은 이미 그렇게 흘러 혈기를 내세운 손자뻘도 한참이나 넘는 방자한 젊은 녀석(?)에게
이리 저리 치받치며 밥그릇마저 빼앗겨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늘 곁에서 돌봐주던 지기가 방자한 녀석을 혼내주며 그를
지켜 주곤 했다. 그래서일까, 노쇠한 지기는 그의 주인 지기 가족을 위해 그가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을 아끼지 않았다. 집안 곳곳에 그의 멍에를 통해 옮겨진 땔감 무더기가 수북이 쌓인 채
그가 남기고 간 땀의 의미를 일러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목에서는 코뚜레가 풀어져 내렸다. 그 자신의 혼과도 같았던,
그가 움직일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며 늘 함께 울려 퍼졌던 종(핑경)도 덩달아 목에서 내려졌다.
30년 지기와 또 함께 해온 두메산골 정든 곳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할 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서 순간적으로 한줄기 길다란 눈물방울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지기(知己)와의 이별의 순간을 이미 알고 안녕을 고하는 것 같았다. 순하디 순한 큰 눈망울이
더 크게 떠졌다. 그러더니 이내 조용히 눈을 감으면서 왼편으로 서서히 고개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말없이 수건으로 눈시울을 찍어내며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30년 지기, 할아버지의
눈에서도 이내 서러운 눈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잘 가거래이, 좋은 대로 가그라"!!


'땡그렁', '땡그렁' 그와 함께 했던 '워낭소리'도 두메산골 한곳에서 멈추어졌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큰 화두를 남기면서!!



                                                

                                


애린
옮겨온 글입니다............ 2009-03-12
23: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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