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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수필
애린  2015-10-10 22:30:50, 조회 : 758, 추천 : 93




    물은 흐르고 흘러서...
    이종희

    평소 알고 지낸 베트남 사람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그곳은 호찌민시 동남쪽 변두리에 있으나 어느 지점부터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더는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논둑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이 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가 사라질 수 없는 원천은 바로 이런 여건 때문일 것이다.

    벼 이삭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로 보아 멀지 않은 추수를 예감할 뿐, 이국만큼이나 낯선 시골은 망망대해 늪지대였다. 길이라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논둑길이 전부였다. 그러나 오랜 가뭄으로 목마른 둑길은 소나무 껍질처럼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농가는 생각보다 깨끗하고 정갈했다. 이 집 식구들의 깔끔한 손길은 군더더기 없는 농가 산림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정돈된 헛간을 둘러보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처마 끝에 이어진 관 아래로 물통들이 즐비해 있는 걸로 보아 우기 때는 빗물을 받아 쓰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건기인데다가 수돗물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데도 크고 작은 통마다 투명한 물이 가득 찼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물은 집을 에워싼 연못에서 퍼 담은 거라 했다. 갈색 물의 찌꺼기가 가라앉고 맑은 물이 떠올라 식수가 되기까지의 시간 때문에 그 많은 물통이 필요했던 것이다.

    연못에서 수련이 얼마큼의 물을 정화해 줄지는 모르나 둑 하나를 사이로 화장실과 양어장이 있고, 그 건너엔 오리 농장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아연케 하기에 충분했다. 주위가 모두 물바다이다 보니 비록 둑이 진흙으로 되어 있다지만 쌓인 둑 틈으로 물의 혼합 일체를 이룰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특히나 오랜 건기 중인 요즘 하늘에서 빗물이 떨어지기는 만무한데 여전히 물은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유는 바다 수면과 동시에 높아진 강물의 범람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사 학년 겨울방학 때 우리 가족은 고향인 섬으로 다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비록 유년기를 그 섬에서 보냈다고 하지만, 섬 생활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나는 그토록 그리워지고 보고 싶던 어린 날 옆집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무색케 했던 어느 바람 부는 날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바로 집 주위의 말라버린 샘을 등지고 붉은 동백꽃이 둔탁하게 떨어지고 있던 숲 속을 가로질러 엄마와 나는 빨래통을 이고 보물섬을 찾아 나서야 했다. 이윽고 찾아낸 우리의 보물섬은 갈잎에 덮인 채 물을 퍼낼 때마다 금세 흙탕물로 변해버린 빈약하기 짝이 없는 물웅덩이였던 것이다. 수돗물이 옥수처럼 쏟아지던 도시의 지난날은 환각이었을지언정 그 순간 그것은 끔찍한 기억이 되고 말았다.

    그런 절망의 나날이 섬의 가난한 물줄기만큼 메말라 버린 어느 순간부터 그 생활은 익숙해졌고, 식수로 사용하던 샘물은 언제나 동네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의 몫이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듯 섬에서 살아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물을 아끼고 찾아내는 지혜와 부지런함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나눔의 실천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우연히 아랫동네의 낮은 샘물을 마셔볼 기회가 있었다. 그 맑은 샘물은 짭짤하게 간이 되어있었다. 쓰레기와 얕은 기름띠가 유유히 유영하던 바닷물 유입의 증거인데 알고도 모른 체 사람들은 그 샘물로 한여름의 갈증을 시원스레 해갈하곤 했었다. 그런 문제를 제기할 기력마저도 남아 있지 않은, 그나마도 귀한 샘물이었고, 그도 모자라 물을 찾아 배를 타고 나가야 할 만큼 그 섬은 목말라 있었다.

    이즈음 새삼 느껴지는 것은 모든 물은 언제나 섞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내가 보았던 어느 허름한 농가의 화장실을 거친 물은 오리농장의 혼탁한 물과 함께 사이공 강을 따라 흘러서 더러는 아름다운 서남아시아 해변에서 까만 주검의 엄청난 가해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해자는 어느덧 우리 고향 청정해역 그 푸른 물빛 속에 뒤섞여 옥빛 파도 되어 뒹굴고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아무리 깨끗하고 맑은 물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간절히 원할 때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오만 잡균이 번식한 물보다도 가치가 없다는 것을…





    달빛 닮은 집
    이종희

    살아생전 과묵하셨던 우리 엄마가 어쩌다 입을 열기라도 할라치면 눈물 콧물 쏙 빼게 하는 위트와 유머가 있었다. 지병이 너무 깊어 축 늘어져 계시면서도 엄마는 내가 가까이 눕기라도 할라치면 과거로 직행하는 블랙홀에 빠져서는 마치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주실 것처럼 엄마의 유년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시곤 하셨다.

    엄마 심지에 굳건히 자리 잡던 외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외삼촌 가족이 모두 여수로 이사를 가시면서 외가는 우리 부모님께서 오랜만에 ‘내 집’이란 문패를 달 수 있었던 집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유년기를 들을 때마다 내 유년기와 맞물러 선명하고 실감 난 영상들이 펼쳐지곤 했다.

    온 식구가 하나 되어 우리의 보금자리를 가꾸고 다듬던 시절이었다. 솜씨 좋은 아버지는 나무를 깎고 다듬어 널찍한 새 마루를 만드시고는 여러 날 페인트칠을 하시느라 슬레이트 지붕에 올라가 계셨다. 그리고 우리 자매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아침 해가 제일 빨리 드는 돌담 가에 화단을 만들어 꽃씨를 뿌려두었다.

    깊은 밤에 들려오는 산짐승 울음소리가 하나도 두렵지 않을 만큼 우리 집 마당에 달빛이 내려앉는 날이 많았고, 우리 집을 향해 뻗은 바다와 섬들이 모두 내 것인 양 가슴을 부풀게 했던 전망 좋은 돌담 가도 있었다.

    직장 때문에 다시 해외로 떠나야 하는 막냇동생과 서러운 작별을 치르던 엄마가 간성혼수 중에도 애타게 찾으시던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보여주시던 온화한 미소가 모두 집결한 듯 너무도 따뜻하고 아늑한 집이었다.

    어느덧 나와 동생이 만든 화단에는 엄마가 심어둔 앵두나무, 수국, 국화가 우리가 자란 만큼 무성해져갔고, 화단에 뿌려둔 꽃씨가 이듬해부턴 마당 가득 꽃으로 피어나기도 했다.

    그 마당은 풀이 자라기엔 척박했으나 그곳에서 피어나던 채송화 꽃은 그야말로 가을 공기처럼 맑고 순수했다. 그래서인지 채송화는 푸석한 듯 마른 땅에서 아침 이슬이 실바람을 타고 서서히 말라갈 때 꽃피우면 제일 예쁘고 고운 줄 지금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꽃들이 화단에 가득 차오르던 날부터였을까. 우리가 매일 가슴 시리게 보았던 노을이 수평선 끝까지 황금 주단을 풀던 무렵이었을까. 아니면 앞섬 너머로 밤배 등이 하나둘 깜박이던 어느 날부터였을까. 너무도 평온한 일상들이 온 섬에 번지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아버지는 우리 집 새랍 밖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시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고, 급기야는 그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날이 다가왔다.

    매일 아침이 오고 다시 해가 뜨는 순리를 세상은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그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게 보통 분하고 억울한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가시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내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들어앉은 듯 서러운 눈물조차 흘릴 수가 없었다.

    "좀 어떤가?"
    "늘 그렇지...뭐..."
    "허어...어찌까... 빨리 좋아져야 하는데..."
    어느 날 평소 친분이 짙은 집배원 아저씨와 나눈 대화였는데
    ‘빨리 좋아져야 하는데...’ 그 말씀은 곧 좋아질 수도 있다는 말 같아
    어린 가슴에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도 무색하게 거친 바닷길을 수없이 이겨내시던 아버지의 기름진 근육들은 나날이 무너져 내리고, 그 내림과 동시에 부풀던 아버지의 배가 더는 오르지 못할 때였을까. 두 동생이 조부모님을 모시러 아랫마을로 내달리던 그 어둡고 무서운 길 위에서 보았던 샛별처럼 아버지의 고통도 아스라이 멀어져 갔다.

    여전히 내가 보았던 많은 것들은 건재해 있고, 내가 갈망했던 많은 것들은 서서히 순풍을 타고 있지만, 그 찬란한 시절에 내려앉은 슬픔의 조각들은 예고도 없이 수면 위로 떠올라 아직도 나를 무너뜨리곤 한다.

    내 눈길 가는 곳마다 느닷없이 출몰하던 어두운 그림자를 다독여 멀리 보낼 수 있었던 뒤란에 숨은 바람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줄 아직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함께 만들던 울타리와 그 안에서의 가슴 따뜻한 날들은 내가 걸어온 길의 등불이 되어 무기력해가는 내 순수를 자주 다독이곤 한다.

    며칠 전 동창회 참석을 위해 여수에 다녀오는 길에 엄마가 계신 봉두에 들렀다.
    손 내밀면 하늘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곳이어서 바람이 너무 잦으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도 있었는데 그날 엄마 계신 곳은 생각보다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잊고 살면 내게 고인과 같고, 이미 고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동안에는 살아있는 사람이라' 했던가...

    그러나 내가 엄마께 해드릴 수 있는 건 자주 찾아뵙지 못한 마음에 준비한 조화 다발과 소주 한 병 그리고 새우깡 한 봉지가 전부였다.

    그래도 엄마가 살다 가셨던 이 세상을 더는 서럽게 보지 않는다.
    엄마의 무덤가에는 겨울바람을 묵묵히 이겨 내고 있는 영산홍이 있고, 나도 언젠가 그 꽃으로 이 세상 어딘가를 곱게 물들일 테니까...





    당선소감


    어릴 적 동생과 함께 아버지 등에 업혀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 깔깔대며 코스모스 피어있는 들녘을 스치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어 다음 장면은 언제나 꿈결같이 몽롱한 코스모스 들판에 멈추어 서 있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멈추어버린 기억이 느닷없이 살아나 우두커니 서 있는 제 마음을 흔들어 놓곤 하였습니다. 그 떨림에 쓰기 시작한 글이 또 다른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되었습니다.

    지난 길에는 마른 낙엽 한 잎, 여린 풀꽃마저도 질긴 생명력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신 고마운 분들이 계십니다.

    잊지 않으며 하루하루 배우고 사유하는 글쟁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he Ludlows(영화 '가을의 전설 Legends Of The Fall' OST) - James Horner

            


애린
12월 28일 서울 남산 문학의 집에서
국제문학 13호 출판 기념식과 신인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시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써보기도 하고 외어보기도 하고
남몰래 낭송해서 녹음을 하다가 이종 사촌 동생에게 들켜
무척 민망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시에 대해 여전히 공부중이지만
시인이라 함은 아직도 민망하고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 전 우연히 들른 너른 마당에서
글을 쓰며 많은 분들과 교류하게 되었지요.
어느 분은 그런 저를 보고 등단을 준비하는 중이라 하셨지만
저는 가당치도 않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예상대로 덜컥 등단을 하고 말았네요.
이런 일들이 여전히 겁나고 편치는 않지만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너무 큰 축복인 것 같습니다.

‘너는 시 보다는 수필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어느 분의 충고에 오래전 써 두었던 두 편을 골라 다듬어
이번에 수필로 등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서툰 제 걸음 다독이며
늘 방향을 제시해 주시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5-12-30
00: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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