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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구꽃 회상
애린  2019-04-18 09:55:24, 조회 : 166, 추천 : 27

물구꽃 회상


내 초등시절의 등하굣길은 결코 만만한 길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길이 좋았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이야포 몽돌밭에서 지천으로 널려있는 조가비를 주워 모아 소꿉놀이를 할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산길의 꽃들은 약속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어났다.

가끔 구름다리 솔밭가에서 윤슬이 내려앉은 바다를 볼 때면 보이는 모두가 내 것인 양 가슴이 들뜨고 설렜다.

웃서고지를 향하는 언덕을 오르다 보면 동네 언니들과 노래 자랑하던 무대가 있었다. 그 곳은 작은 둔덕처럼 낮고 초라해서 무덤이란 존재를 잊을 때가 많았다.

완연한 봄, 햇살이 온 누리에 퍼져도 스산한 바람의 기운이 맴돌던 초봄 언저리였나 보다.
친구들과 그 무덤가를 스칠 때였다. 저만치 들풀 사이로 아지랑이처럼 투명하고도 신비로운 물결이 일렁이는 게 아닌가.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것이 꽃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적이 드문 척박한 산길에 보드랍고 여린 순백의 꽃이 피었다는 것을 직접 보고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마치 피어나지 말아야 할 곳에 피어난 것처럼 새삼스러웠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친구들의 조잘거림이 멀어진 줄 알고서야 숨을 헐떡이며 앞서간 친구들을 겨우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 가거나 집으로 돌아올 때면 버릇처럼 그곳을 쳐다보는 것이 은밀하고도 사치스런 재미가 되었다.

그런데 내 호기심은 기어이 그 꽃을 뿌리째 파 보고 나서야 끝이 났다. 장성한 파의 머리를 닮은 뿌리와 꽃을 보느라 보지 못한 잎이 보이면서 그 꽃이 물구꽃이라는 것을 알았다.

동네 친구들과 쑥이나 달래를 캐러 가서는 잘못 파서 흙 밖으로 나온 물구 뿌리를 보면서 먹지 못한 것이 아쉽고 아까웠던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글동글한 알뿌리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유별나게 오지고 포만감 있어 보였다.

그동안 그렇게  별게 아니었던 물구가 별같이 빛나고 아가솜털같이 여린 꽃을 피우고 있다니, 그날 내가 알던 물구에게는 반전의 기회를 잡은 개과천선의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물구는 독소는 있지만 식용이고 약용에도 쓰였다니 내 무지가 기억 속 물구의 가치만 떨어뜨린 셈이었다.

그렇게 그 누구든  본연의 그들을 알고  그가 되어 본다면 저 민낯에 스민 순하고 보드라운  마음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꽃피기 전 물구는 들풀과 어우러져 있을 때보다 흙이 부석거리는 밭두렁에  자리할 때가 웃자람 없이 당당해 보였다.

저 먼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과 이슬에 씻긴 잎들이 햇살에 닿아 일제히 반짝이는 모습은 꿈결처럼 몽롱하고 아득해서 가만히 그곳만 응시했다간 흡수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미세한 성장통과 함께  슬며시 흙을 밀치며 섬 아이의 인기를 독차지한 달래 곁에 계면쩍게 서 있던 물구는 달래의 운명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채 한 번쯤 미지의 문밖으로 나서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쩌다 달래를 캐는 섬 아이의 서툰 손길에 닿아도 쓸모에 대해 알 리 없는 까닭에 훤히 드러난 속살의  수치심을 감내하고도 세월을 보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나는 그 후로 오랫동안 물구꽃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진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감기처럼  물구꽃 앓이를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람들이 물구꽃을 잘도 찾아내 실물보다 더 곱고 아름답게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바람에 검색만 하면 수천수만의 물구꽃 송이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꼭꼭 숨겨두고 귀하게 꺼내 보고 싶은 내 그리운 물구꽃이 내 유년의 산길과 함께 퇴색해버린 것 같아  어쩐지 아쉽고 서운하다.

지금도 그곳엔 물구꽃이 너머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한 채 한가로운 봄 햇살에 피고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물구꽃은 이미 나와 함께 떠나와  순백의 그리움으로 피고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애린
물구꽃(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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